영화 <조조 래빗> 리뷰

동화 같지만, 마냥 동화 같지는 않은 성장 이야기

by 김인혁

영화 <조조 래빗>은 2차 세계대전 말기, 패망 직전의 독일을 배경으로 '조조'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는 성장영화이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초반부는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색감을 통해 비교적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한다. 나치라는 국제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영화의 주된 소재로 등장하지만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연출을 통해 잠재적인 논쟁의 여지를 피해버린다. 오프닝부터 흘러나오는 우리에게 익숙한 신나는 리듬의 곡은 다름 아닌 바로 독일을 무너뜨린 영국의 대표적인 밴드 비틀스의 흥행 곡 'I Want to Hold Your Hand'이며 조조를 가르치는 나치 간부들이 어딘가 모자라게 묘사된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이밖에도 수류탄 오발로 상처투성이가 된 조조의 얼굴을 보고 나치 간부가 '피카소' 같다고 하는 등 (피카소는 히틀러가 싫어했던 화가였다.) 영화 구석구석을 잘 살펴보면 나치를 '까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나치 소년단'의 훈련 모습과 블랙코미디를 보는듯한 나치 간부들의 과장된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이 영화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나치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다룰 때는 우스꽝스럽거나 과장된 연출 없이 현실 그대로,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조조 래빗>은 적어도 나치의 만행을 묘사할 때는 음악이나 연출이라는 필터 없이 그대로를 관객에게 묘사한다.


조조와 엄마가 나치에게 목이 매달려 죽은 시체들을 보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영화의 초반부 조조가 나치에게 희생당해 거리에 걸린 시체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리자 로지는 조조의 얼굴을 잡고 억지로 바라보게 한다. 마치 영화의 밝은 면만 기대하고 온 관객에게 처참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 이 장면에선 그전까지 흘려 나오던 밝은 음악도 멈춰버린다. 이렇게 <조조 래빗>은 동화적인 연출과 현실적인 연출을 순식간에 오고 가면서 관객들이 현실을 잊어버린 채 조조의 동화 같은 이야기에만 빠지지 않게 만든다.

조조의 엄마인 로지나 유태인 엘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캐릭터성이 강하게 묘사되는 점도 관객들이 나치라는 소재에 거리를 두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연출적 특성 중 하나이다. 영화는 히틀러를 광적으로 신봉하고 유태인을 증오하지만 정작 유태인을 '구별'해내지도 못하는 게슈타포들이나 나치에 열광하지만 정작 폭력을 보면 기겁하며 도망가버리는 조조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인물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며 마치 한 편의 희극을 보는듯한 연출을 보여준다. 이런 광기 속에서 로지는 이성을 유지하고 자신의 길을 걷는 인물이다. 모자라 보이는 인물들 중 가장 이성적이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길을 걷는 주체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조조의 가상친구 히틀러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히틀러와 로지 둘 다 조조의 자아형성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며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인물들이지만 이 둘의 용기는 결이 다르다.


히틀러의 용기는 증오에서 비롯된 용기다. 조조가 갈등 상황에 빠질 때마다 히틀러는 증오로 이겨내라고 말한다. 조조가 유태인 엘사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자 조종당하지 말라며 충고하는 장면은 마치 나치가 대중을 현혹시킨 방법과 비슷하다. 문제의 원인을 다른 집단에게로 돌리고 마치 그 집단만 사라지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처럼 만들어버리면 대중은 생각보다 쉽게 선동당한다. 나치가 사라진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정치적 전략 중 하나이다. 유켄트의 보조교관으로 등장하는 람은 바로 이런 사고방식에 세뇌된 인물이다. 그녀는 주위에서 일어난 모든 사소한 문제들조차 유태인의 탓으로 여기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반면 조조의 엄마 로지는 사랑, 그리고 평화만이 모든 해결책이라고 조조에게 말한다. 사랑을 하게 되면 나비가 뱃속에 나비가 들끓는다거나 조조나 엘사에게 계속해서 운명의 상대는 그냥 알아볼 수 있다는 말들을 던지며 이 모든 갈등을 회복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히틀러와 로지의 상반된 가르침 속에서 결국 로지가 당차게 클렌체도르프 대위의 정강이를 걷어찬 것처럼 조조 또한 자신의 단짝이었던 히틀러를 창밖으로 차바리면서 사랑이라는 방식을 택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이 둘의 방식과는 달리, 조조에게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인물인 클렌첸 도르프 대위는 문제와 마주하지 않고 회피라는 방식을 택한다. 캠프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독일군이 지고 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는 항상 술병을 들고 다니며 틈만 날 때마다 술을 홀짝거린다. 이미 패전의 그림자가 진 가망 없는 현실에서 그는 술에 취해 현실을 잊고 살아가려고 발버둥 친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그는 현실을 포기한 듯 자신이 디자인한 말도 안 되는 디자인의 군복을 입고 미친 사람처럼 전쟁에 나선다. 그는 최후까지 연극배우같이 화려한 화장과 의상을 입고 전장에 나서며 나치가 선전용으로 '만들어 낸' 영웅이라는 역할에 충실하는 어떻게 보면 나치의 또 다른 희생자 같은 인물이다. 진작 나치가 패망할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조조를 살아남게 한다. 조조의 군복을 벗기고 자신이 대신 희생당하는 장면은 마치 고전 명작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가 아들 조슈아를 위해 끝까지 밝은 척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씬이 연상되는,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은 장면이었다.


<조조 래빗>의 연출이 빛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아이러니함'을 통해 영화가 가진 상징성을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조조와 엘사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살펴보자. 혼자 있던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조조는 캠프에서 얻은 나치 단검을 가지고 수상해 보이는 벽 틈을 열어보게 된다. 그렇게 조조는 그토록 잡고 싶었던 유태인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고, 엘사는 그제야 비좁은 방에서 나와 넓은 집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나치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단검이 그들이 억압하는 대상인 유태인들의 고립을 해소시키는 도구가 됐다는 아이러니함이 빛나는 장면이다. 폭력과 억압의 도구인 단검이 그 본래의 목적을 잃고 화해와 소통의 수단으로 바뀌는 이 신을 통해 타이카 감독은 나치가 내세우는 폭력이 의미 없는 것임을 관객들에게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런 종류의 아이러니함은 영화의 후반부에도 등장한다.


집 밖을 나선 조조가 나비를 따라가다 엄마의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 시퀀스는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지는 영화의 초반부와는 달리 전시 중인 참혹한 현실을 상징하는 눈과 흙이 뒤섞인 잿빛으로 묘사된다. 흑백의 세상에서 혼자 밝은 푸른빛으로 빛나는 나비는 자유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런 나비가 조조를 이끈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차갑게 결박된 엄마의 시신이다. 게다가 <조조 래빗>은 영화의 초반부부터 조조의 시야에서 보이는 엄마의 신발을 카메라에 의도적으로 계속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켰는데 이 씬에서 또한 교수대에 매달린 엄마의 신발을 클로즈업 함으로써 조조가 느꼈을 충격과 슬픔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다. 엄마의 죽음을 기점으로 영화는 동화적인 연출 대신 전쟁의 참혹한 풍경들을 일상적인 것처럼 담담하게 그려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수류탄으로 자살테러를 종용하는 장면이 특히 충격적이었다. 아동과 전쟁이라는 상반되는 소재를 과감하게 한 장면에 나란히 두면서 <조조 래빗>은 현실의 잔혹성을 극대화시킨다.


조조가 수류탄 사고를 당하고 수영장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장면은 이런 연출이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치료를 받는 조조와 옆에 무표정으로 앉아있는 다리가 잘린 상이군인을 같은 프레임 안에 두면서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폭력을 보여준다. 이 장면을 보고 나자 <조조 래빗>이 얼마나 미장센을 잘 활용하는지 알 수 있었다. 미장센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 또한 빛났다. <어벤저스>의 블랙 위도우에 가려진 스칼렛 요한슨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 실력파 배우였는지 피부로 와 닿았다. 특히 잿가루를 입가에 묻히고 1인 2역으로 아빠와 엄마를 오가는 모놀로그 씬은 별 다른 대사 없이도 스칼렛의 진심이 느껴질 정도로 인상 깊은 '눈빛 연기'를 선보인다. 주인공 조조를 비롯한 요키 등 아역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했다. 요키는 매 등장 때마다 영화의 분위기가 달라질 정도로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너무나 잘 연기한 것 같다. 클렌체도르프 대위를 연기한 샘 록웰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인상 깊었다. 전혀 기대감이 없던 캐릭터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영화를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뽑자면 다섯 손가락에 드는 장면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는 장면은 바로 조조가 엄마와 엘사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없이 신발끈도 묶지 못했던 조조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고, 자신의 신발끈이 아닌 남의 신발끈을 처음으로 묶어주며 비로소 홀로 살아가는 모습은 대견하면서도 어딘가 애틋하고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인지 조조의 성장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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