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혁 Mar 29. 2019

영화 <캡틴 마블> 리뷰

매력 없는 영웅의 탄생

히어로들은 모두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이 있다. 캡틴 아메리카의 고결하고 범 인류애적인 가치관, 자기애 넘치지만 시련을 통해 점점 성숙해져 가는 아이언맨, 말 많고 인간미 넘치는 이웃 같은 짠내 넘치는 영웅 스파이더맨 등등.

이런 캐릭터들의 고유한 개성은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관객들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해 준다. 이런 점에서 히어로의 등장 배경과 일대기를 그려내는 1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을 담은 <퍼스트 어벤져>의 정밀한 캐릭터 묘사나 볼거리와 캐릭터의 정체성까지 완벽히 구축해낸 <아이언맨>과 <닥터 스트레인지>이 증명했듯이 아무리 한국 관객들에게 낯선 캐릭터라도 탄탄한 대본과 눈길을 끄는 액션이 있으면 관객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한국 관객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히어로들도 저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케미를 통해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받으며 한국에서도 이제 꾸준히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캡틴 마블>은 기존의 마블 영화 1편과 달리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뚜렷한 장점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한 영웅의 일대기를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의 지지를 얻어내야 하는 1편이라는 막대한 임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히어로서의 캡틴 마블 보다 여성으로서의 캡틴 마블을 그려내는데 집중한 나머지 캡틴 마블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어떤 매력인지 전혀 와 닿지가 않는다. 액션 또한 형편없었다. 여성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운 히어로 영화답게 강한 여성상을 그려내고 싶었는지 영화는 시종일관 다 때려 부수는 다찌마와 리 식 액션을 보여주며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냥 캡틴 마블의 사기적인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버리는 다소 맥 빠지는 연출을 보여준다.

히어로에 대적하는 뚜렷한 빌런이 없다는 점도 타격이 크다. 악당으로 등장했단 스크럴은 난민이라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단순히 이용하려 관객들에게 어필하려는 도구적인 캐릭터로 전락하고 그나마 최종 빌런이라 할 수 있는 로난은 앞서 말했던 캡틴 마블의 무쌍 난무에 꽁지 빠지게 도망쳐버리고 욘 로그는 영화에 몇 번 등장하지도 않는 데다 별다른 활약도 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영화는 확실한 빌런의 존재를 그려내지 못하고 히어로의 고뇌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은 후루룩 넘어가버리고 그저 캡틴 마블이 얼마나 대단하지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것 같은 모습만 보여준다. <캡틴 마블>과 같이 뚜렷한 정치색을 드러냈었던 <블랙 팬서>가 흥행한 이유는 흑인 관객들의 정서적 유대감과 그들의 고통을 영화적 재미로 잘 승화시켰다는 점을 고려하면 <캡틴 마블>은 여성 관객들을 이끌어낼 만한 매력이 없다. 정치적인 메시지를 걷어내고 보더라도 캡틴 마블은 대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가 없는 영화이다. 캡틴 마블의 탄생을 다룬다기엔 과거에 대한 별 다른 묘사나 캐릭터를 탄생시킨 주요한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을 잊었다는 설정은 왜 등장했는지 모를 정도로 몇 번 울고 나서 해결해버리고 자신의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수호자가 된다는 결말도 위대한 여성상을 그려낸다는 의도가 너무 과하게 느껴진다.

혹시 마블이 이런 위대한 여성상을 그려냄으로 페미니즘을 이용할 생각으로 이 영화를 연출했다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 이런 행동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돈벌이로 이용하는 정말 수준 낮은 결정이다. 정말로 페미니즘에 대한 히어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단순히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만이 아닌 탄탄한 스토리를 통해 보다 더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무턱대고 강한 여성상을 내세우는 히어로 영화를 만듦으로써 관객들의 가치관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블랙 팬서>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뚜렷한 갈등을 통해 자신이 나아갈 길을 고민하고 새로운 군주로 자리 잡는 트찰라의 캐릭터를 섬세하게 구축했음과 달리 <캡틴 마블>은 의미 있는 갈등 없이 퍽퍽한 스토리를 액션이라는 조미료도 치지 않은 채 관객들에게 억지로 먹이는 영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