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코미디언: 대중들이 열광하는 것
어딘가 기괴한 사운드의 오프닝 테마로 어린 시절 우리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추억의 TV 시리즈 <환상특급 시리즈(THE TWILIGHT ZONE)>가 2019년을 맞이하여 3번째 리메이크를 맞이했다. 리메이크를 맡은 주인공은 바로 영화 <겟 아웃>, <어스>로 한국의 스릴러 영화팬들에게 눈도장을 받은 영화감독이자 코미디언인 조던 필이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알 수 있듯이 조던은 코미디언이라는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를 뛰어넘어 그만의 독특한 스릴러 장르를 훌륭하게 구축해내고, 또한 단순한 스릴러라는 장르영화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고심해온 인종문제들을 영화에 녹여내는 데 성공한 유일무이한 감독이다. 과연 그가 만들어내는 '환상특급'의 세계는 어떨지 기대감을 안고 시리즈를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환상특급: 트와일라잇 존> 시즌 1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바로 '코미디언'이다. 무명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우연한 기회에 유명 코미디언을 만나고, 그를 만난 뒤 벌어지는 이상한 일이 이 에피소드의 주된 내용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번 에피소드는 조던 필 감독 본인이 성공한 영화감독이자 코미디언으로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의 생태계를 내부고발자의 시선으로 파헤쳐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가 가장 잘 알면서도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 었기에 '코미디언'이 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가져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조던 필이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점을 무엇일까?
주인공인 사미르 와산은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삼은 조크를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그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 않으면 코미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는 자칭 '깨어있는 코미디언'이다. 매일같이 총기규제를 다루는 헌법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에 대한 농담을 하며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자 하지만 사람들은 사미르가 무대에 서는 순간 관심을 꺼버리고 그의 코미디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의 동료들조차 사미르를 재미없는 코미디언이라고 무시하며 그의 코미디를 깎아내리기 일수다.
여기서 사미르의 인간적인 본성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조크를 아주 수준 있는 조크라고 자부하며 자신이 하는 코미디에 자신감이 넘치지만 정작 그 또한 사람들의 관심에 목마른, 성공에 굶주린 인물이다. 사회적인 성공과 자신의 철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미르의 모습은 우리와 매우 닮아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 된 현대인들에게 무대는 자신의 가치를 수치화하고 대중들에게 평가받는 냉정한 곳이며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면 대중하게 고개를 돌려버리는 관객들 또한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두 갈래 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사미르에게 나타는 인물은 바로 유명 코미디언인 JC휠러, 사미르에게는 신과 같은 인물이다. 대중들의 관심을 마음껏 누리는 그에게 사미르가 주는 충고는 단 한 가지,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그는 충고와 함께 한번 농담의 소재로 삼은 것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는 의미심장한 경고도 함께하지만 사미르는 괜찮은 인생을 위해서가 아닌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서' 코미디를 시작했다며 그의 충고를 호기롭게 받아들인다.
JC휠러의 충고가 심상치 않다. 그에 따르면 코미디언이 한 번 사생활을 드러내면 관객은 소화하고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그와 함께 코미디언의 인생에서 영영 사라진다는 그의 말은 어딘가 찜찜하게 들린다. JC휠러의 조언은 시리즈의 제작자인 조던 필이 성공을 맛본 코미디언으로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코미디 바의 관객들은 총기규제 헌법같이 당장 자신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주제보단 사미르의 강아지나 동료 코미디언 같은 일상적이고 가벼운 것을 소재로 하는 농담을 원한다. 사미르가 더 이상 사회적 이슈에 관한 조크를 하지 않고 그의 강아지 이름 같은 시시껄렁한 소재를 농담으로 삼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호응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조던 필이 코미디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코미디 바의 관객들은, 우리들은 진지하거나 무거운 주제를 듣기 위해 찾아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그저 시간을 때우고 한바탕 웃어넘기고 싶지, 총기규제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듣기 원하지 않는다. 조던 필은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코미디언 자신뿐 아니라 코미디의 사회비판이라는 특성을 회피하고 오락성에만 집중하는 대중들의 태도 또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사미르가 마침내 자신의 강아지를 소재로 한 조크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무대를 내려오자 그의 강아지는 사라져 버린다. 아니,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누구도 사미르의 강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걱정도 잠시, 사미르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동료까지 농담의 소재로 삼아 사라지게 만들며 폭주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서' 코미디를 시작한 사미르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주변인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일상적인 것들이 농담의 소재가 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어떤 무거운 주제라도 코미디 무대에 오르는 순간, 관객들은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무대 위의 '농담거리' , '오락거리'로만 인식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관객들은 사미르가 겪는 고통이나 상실감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자신들을 웃겨주고, 유흥거리를 주길 원한다. 사미르의 조크 소재가 강아지에서 시작해서 점점 그의 주변인, 더 나아가 그의 적들로까지 확대되는 모습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대중에게 끌려다니는 비참한 코미디언의 최후를 보여준다. 마이크를 쥐는 순간 사미르는 자신이 영웅이나 권력이라도 쥔 것처럼 주변 사람을 깎아내리고 우월감에 빠지지만 대중들이 보기에 그는 결국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는 존재이다.
결국 그는 자신마저 농담의 소재로 삼으며 그가 다뤘던 수많은 소재들과 같이 무대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러든 말든 사미르에게 열광하며 미친 듯이 웃어제낀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엔딩 씬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트루먼 쇼>의 시청자들은 트루먼의 탈출을 같이 지켜보고 그에게 지지를 보내지만 트루먼이 스테이지에서 탈출하고 사라지자 시청자들은 무관심하게 바로 그들의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채널을 찾아 나선다. 마치 이번 에피소드에서 사미르가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코미디언에게 열광하는 관객들같이 대중들은 사미르가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코미디언을 찾아 나선다. 시간은 많고 코미디언들도 많기에 관객들은, 우리들은 오늘도 새로운 코미디언을 찾아 나선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오락성에 길들여져 버린 대중들과 그들을 부추기는 코미디언,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원인인 '코미디 바'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에피소드, <코미디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