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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TV시리즈 <환상특급:트와일라잇 존> 리뷰

EP.5 귀재: 무관심이 만들어낸 정치라는 괴물

by 김인혁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같은 편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 바로 정치다. 정치는 인간의 역사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해왔다. 때로는 누군가의 반역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악랄한 독재자의 탄생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정치라는 시스템은 개혁이라는 도구를 통해 수없이 다듬어져 우리의 곁을 함께하고 있다.

누구는 말한다, 정치는 모두의 의견을 대변하려고 노력하는 아주 합리적이며 이상적인 시스템이라고.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에게 자유를 보장한다고 말이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의 정치도 과연 그럴까? 이번 에피소드는 정치라는 시스템에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다.

여기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한 꼬마 아이가 있다. 아이의 이름은 올리버, 올리버의 꿈은 당차지만 그의 나이는 겨우 11살이다. 이런 그를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다들 해봤을 짓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겠지만, 래프는 이런 올리버를 눈여겨본다. 그가 실패한 선거전략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올리버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기회주의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래프는 과연 이번에는 올바른 기회를 잡은 것일까?

올리버의 가족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래프는 올리버가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대중과 ‘교감’하는 능력이 있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올리버의 정책에는 복잡한 증세나 전쟁이나 환경 이야기 따위는 없다. 올리버는 말한다, 환경이나 전쟁 이야기는 지루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비디오 게임이나 모든 가정에 나눠줄 것이라고 말이다. 얼핏 들으면 11살짜리 아이가 말할법한 현실성 없는 공약에 불과하지만 여기에는 무시무시한 풍자가 들어있다.

대중은 누구보다 정치에 관심 있는척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전쟁이나 환경 이야기가 정책으로 등장하면 싫증을 낸다. 대중은 복잡한 것보단 간단한 걸 원한다. 자신이 처한 문제가 전쟁이나 환경이라는 거시적인 이슈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당장 눈 앞의 현실인 집값이나 취업률에만 눈을 돌린다.

인터넷상에서 장문의 텍스트를 써두고 글 말미에 3줄 요약을 붙이는 유행이나, 긴 영상 대신 5분 이하나 단 몇 분의 영상들이 인기가 있는 것만 보더라도 지금의 대중이 원하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요약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만드는 것의 가장 큰 위험은 그 문제의 해결책 또한 ‘간단하다’고 대중에게 세뇌시키는 것이다.

에피소드 초반에 등장하는 대중들의 인터뷰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자신들이 나서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기를 주저하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절대적인 존재가 자신들의 모든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주기를 원하는 그들의 모습은 남이 아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올리버의 공약들은 이런 대중의 특성을 아주 잘 파악한 공약들이다. 어떤 복잡한 공약이나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지 않고 말 그대로 직접적이며 자신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쉽게 이해가 되는 공약. 비록 올리버가 대선 토론회에서 아무 말도 못 하는 11살짜리 꼬맹이더라도 대중의 의지는 확고하다. 이것이 바로 래프가 말한 ‘교감’이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대로 움직여주는 것, 이미 여기서부터 우리는 올리버가 대선에서 승리할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선 후보자 토론회를 망치며 실패를 예감한 것도 잠시, 올리버는 다시 죽어가는 자신의 개를 주제로 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며 반등에 성공한다. 올리버의 새 영상에는 아무런 공약도 없다. 그저 ‘가족이 전부’라는 감성적인 메시지와 훌륭한 사람들을 주위에 두겠다는 진심이 담긴 말 뿐이다. 아무런 실체도, 알맹이도 없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올리버를 지지한다. 그의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책이 아닌 감성에 휘둘리는 대중의 현실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사실 이번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실질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래프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 올리버는 그저 꼬맹이답게 자신이 원하는걸 맘대로 하기 위해 정치라는 시스템을 ‘이용’할 뿐이다.

대통령이 된 올리버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아저씨 의사를 금지한다는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라며 참모진들을 강요하고 정치는 안중에도 없는 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만 급하다. 래프는 이런 모습에 회의감을 느끼지만 올리버는 그를 반역자로 만들어버리고 자신을 따르도록 강요한다.

후반부 미니 골프장에서 벌어지는 래프와 올리버의 대립 시퀀스는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연상되는 강렬한 장면이었다. 올리버가 말도 안 되는 룰로 이겨놓고 자신이 ‘홀인원’을 했다고 인정을 하라며 래프를 압박하는 모습은 <1984>에서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2+2는 5라며 고문을 하는 장면이 연상됐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올리버의 ‘빅 브라더’는 소셜미디어와 이미지 마케팅을 통해 우리 손으로 빚어낸 괴물이라는 것이다.

래프가 아무 생각 없이 동의한 아저씨 의사 금지법안은 결국 그의 목숨을 앗아가고 아메리칸드림은 악몽이 되어버린 현실을 보여주며 에피소드는 마무리된다. 모두에게 평등함과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 아래에 얼마나 많은 ‘올리버’들이 탄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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