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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TV시리즈
<환상특급:트와일라잇 존> 리뷰

EP.4 여행자 A: 역사라는 수레바퀴

by 김인혁

역사는 언뜻 보기엔 복잡해 보인다. 한 나라의 등장과 멸망, 또 다른 왕조의 탄생과 침략 그리고 다시 새로운 탄생.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인간의 역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폭력과 평화, 멸망과 탄생, 더 쉽게 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침략하는 쪽과 침략당하는 쪽으로 분류된다. 이 간단한 키워드는 우리의 역사뿐 아니라 전 세계의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조던 필은 인류사를 통틀어 되풀이되고 있는 역사를 50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압축하여 보여준다. 이번 트와일라잇 존은 바로 '인류'다.


알래스카 작은 마을에 위치한 이글라크 경찰서의 크리스마스이브는 조금 특별하다. 마을 전체 인구가 천명도 되지 않는 이곳에서 경찰서장 펜들턴은 크리스마스이브마다 자신의 '특별한' 권리를 행사하여 유치장에 갇혀있는 수감자 중 한 명을 사면해 주는 전통을 20년째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통의 수혜자가 될 인물은 바로 유카의 오빠 잭. 유카는 잭을 사면시키기 위해 유치장에 들어가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한 명 더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여행자 A'라고 소개하는 그는 과연 이 작은 마을에 축복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끔찍한 재앙의 원인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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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공간에 예상치 못하게 나타난 정체불명의 인물'이라는 클리셰로 시작되는 이번 에피소드의 핵심 인물은 셋, 펜들턴 서장, 유카 경사 그리고 스스로를 여행자 A라고 소개하는 정체불명의 인물이다. 먼저 펜들턴 서장은 이 작은 왕국의 왕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믿는' 사면권을 행사하며 자신의 권리와 마을 사람들의 지지를 즐긴다. 펜들턴은 사면을 진행하기 전 거창하게 애국심과 자신들의 선조 얘기까지 운운하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늘 증명하고,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환호를 받고 싶어 하는 권력욕에 가득 차 있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펜들턴과 유카의 관계는 어떨까. 언뜻 보기에 그는 알래스카의 원주민 출신으로서 소수자인 유카를 존중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원주민 출신인 유카 앞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알래스카 주를 '길들인' 조상들을 칭송하는 발언을 하는 등 유카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깔보고 무시한다. 그는 역사를 자신이 이 마을에서 왕위를 지켜야 하는 정당성으로 이용하며 자신과 조상의 침략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여행자 A는 이런 펜들턴의 왕국에 새롭게 등장한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뉴페이스라는 이점과 자신의 화려한 언변을 통해 그는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순식간에 신분 상승하며 펜들턴의 굳건해 보였던 왕권을 흔들며 위협하는 도전자이다. 이 작은 시골마을의 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높고, 더 거대한 권력에 목말라하는 펜들턴의 욕망을 정확히 꿰뚫어 본 그는 감언이설로 펜들턴의 호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지옥으로 향하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하던가. 낯선 외지인에서 마을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로 올라갔다는 판단이 들자 그는 본색을 드러낸다.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하나둘씩 폭로하며 그는 그동안 쌓여있던 갈등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 내면에 깊숙에 쌓여있던 불만과 두려움, 여행자 A는 이 둘을 사용하여 손쉽게 마을을 손아귀에 얻는다. 그렇게 그는 즐거웠던 파티가 싸움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서서히 펜들턴의 왕좌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이 치열한 권력 다툼 속에서 유카는 쉽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원주민으로서 수많은 침략의 역사를 목격했던 그녀는 경험에서 비롯된 생존 방법을 택한다. 바로 침묵이다. 그녀의 오빠 잭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조차도 질색해하며 백인들, 정확히 말해 침략자들의 문화를 노골적으로 혐오하는 것과는 달리 그녀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에 자신이 제일 원하는 선물이 무엇이겠냐는 그녀의 질문에 잭은 '백인이 되는 것'이라는 가시 돋친 대답을 던진다. 잭의 대답에서 우리는 유카가 백인이라는 신분과 원주민이라는 태생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두 침략자 사이에서 유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볼 것이다.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와 스티븐 연의 독특한 연기까지 어울려져서 다소 난해해 보이는 이번 에피소드는 역사라는 창문으로 들여다보면 의외로 아주 직설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이번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핵심 소재는 바로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쉽게 말해 백인들의 주류 문화를 상징하는 이 명절은 잭 같은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마을 사람들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이중적인 날이다. 크리스마스가 예수라는 위대한 존재가 탄생한 날을 축하하는 명절인 한편 그 기원인 기독교가 바로 식민지화의 도구로 쓰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크리스마스가 '누군가의 침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날'이기도 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잭은 크리스마스를 문화의 고유성을 파괴하고 하나의 편협한 문화만을 강요하는 날로 여기고 혐오감을 표출한다. 그러나 그 또한 정작 크리스마스를 맞아 칠면조 고기를 준다고 하자 바로 혹해버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백인들, 정확히 말하자면 침략자들의 문화에 반감을 표시하지만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채 행동하는 그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을 제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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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맞은 침략의 새로운 주인공은 바로 여행자 A다. 여행자 A는 새로운 침략자로서 펜들턴이 마을 사람이 아닌 외지인에 불과한 자신을 사면하도록 꼬드기며 펜들턴이 스스로 자신이 쌓아 올린 전통을 무너뜨리게 만든다. 아주 이상적이고 교활한 침략의 방법 중 하나이다. 그렇게 굳건해 보였던 마을의 질서와 관계들을 그는 하나둘씩 파괴해나가며 더 나아가 유카와 펜들턴의 사이의 신뢰까지 망가뜨리려 한다. 그가 유카에게 제안하는 것은 바로 펜들턴 서장의 왕좌이다. 기존의 지배자를 없애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꼭두각시 지배자를 세우는 일은 전형적인 백인들, 정확히 말하면 제국주의의 수법 중 하나였다. 결국 유카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했던 숨겨진 욕망을 부정하지 못한다.


펜들턴 서장이 기밀을 빼돌리고 있다는 여행자 A의 폭로에 유카는 펜들턴 서장의 뒤를 쫓게 되고 마침내 둘은 대면하지만 이미 그곳에는 여행자 A가 데려온 것으로 보이는 UFO의 불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이미 그녀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의 시간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결국 그녀는 또 한 번 그렇게 침략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번에 다른 점은 그녀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유카는 처음부터 여행자 A의 정체를 눈치챈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오빠 잭이 정체를 드러낸 여행자 A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여행자 A, 아니 그들은 처음부터 이 작은 마을을 배후에서 지배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서에 들어서기 전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아닌 무언가의 등장부터 유카의 자리에 놓여있는 '그들'의 모습을 본뜬 조각상을 보면 유카 또한 여행자 A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단지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지켜보았다. 여행자 A가 보여줬던 불안과 불평을 이용한 정치, 현대사회에도 되풀이되고 있는 제국주의의 흔적들, 침략자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소수인들까지 조던 필은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역사를 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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