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리플레이: 차별은 왜 무서운가
<겟 아웃>과 <어스>, 조던 필이 연출한 장편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조던 필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싶은지 모두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동안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인종 차별, 특히 흑인에 대한 차별에 깊은 관심을 꾸준히 드러내 온 조던 필 감독은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온갖 메타포로 점철된 연출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더 직접적이고 과감하게 차별이라는 이슈를 말한다. 이번 환상특급의 주인공은 대학에 합격한 자신의 아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길을 나선 한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흑인'이라면 과연 어떨까? 피부색이 달라지는 순간,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 니나는 대학에 합격한 아들 도리언을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도중에 길가의 한 식당에 차를 세우고 식사를 하던 둘은 사이좋은 모자지간답게 니나가 꺼낸 오래된 캠코더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즐기던 것도 잠시, 카메라는 소금을 쏟는 점원의 모습을 비추며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곧이어 닥쳐질 불행의 징조를 암시한다. 캠코더로 도리언의 모습을 담던 니나는 실수로 되감기 버튼을 누르게 되고, 처음 되감기 버튼을 누르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되감기 버튼을 누르면 과거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니나는 도리언에겐 이 사실을 숨긴 채 다시 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차 안에서 캠코더를 켜고 장난을 치던 도리언은 경찰 단속에 걸리게 되고, 니나는 래스키 경관과 실랑이를 벌이던 중 실수로 되감기 버튼을 누르고 경찰을 만나기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이들의 악연은 시작된다.
아무리 니나가 시간을 돌려 어떻게든 래스키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갖은 수를 써도 니나는 무력하게 무너진다. 래스키 경관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의 추적을 피해 도중에 모텔로 목적지를 바꿔도 이들이 마주하는 결과는 늘 똑같다. '백인'경찰 래스키 경관은 '흑인' 니나와 도리언이 타고 있는 차를 세우고 이들이 목적지로 향하지 못하게 만든다. 미국 내 흑인들의 대학 진학률이 34%에 불과한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들이 목숨을 걸고 도달하려는 목적지가 대학교라는 점이 참 의미심장하다. 에피소드 내내 카메라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채 학교로 향하는 니나와 도리언은 '백인 경찰'로 표현되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계속 발목을 붙잡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에피소드 어디에서도 래스키 경관은 이들이 '흑인'이어서 차를 세웠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조던 필은 래스키 경관의 계속되는 방해와 말도 안 되는 그의 요구를 화면에 담아냄으로써 관객이 이 모자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부당한지 절실히 느끼게 만든다. 결국 아들 도리언을 래스키 경관의 총에 잃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니나는 자신과 아들을 위한 최후의 선택을 한다.
캠코더의 비밀과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니나에게 도리언은 침착하게 새로운 길 (The road we haven't taken)을 제시한다. 바로 니나가 연을 끊고 지냈던 오빠 닐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니나와 닐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그녀가 왜 오빠와 손절하고 따로 살게 되었는지 그 뒷이야기가 드러난다. 니나 역시 과거 차별을 경험했던 피해자이며 누구보다 더 이 사회의 부당함을 잘 알고 있는 장본인이었기에 그녀의 인생을 위해, 또 아들 도리언을 위해 그녀 역시 '새로운 길'을 택한 것이었다. 흑인 히어로 '블랙 팬서'의 팬인 삼촌 닐은 거실에도 'Black Lives Matter' 슬로건을 붙이고 사는 누구보다 흑인 인권에 관심이 깊은 인물로 묘사된다. 닐은 불행의 무한 루프에 빠진 이 모자를 위해 학교로 향하는 비밀통로를 알려주고 이들은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리플레이>는 어떻게 해서든 차를 세우고 억압하려는 '백인 경찰' 래스키와 '흑인' 모자 니나와 도리언의 대립을 통해 현재 미국 사회가 처한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직구를 던지는' 스토리와 함께 에피소드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메타포를 통해 조던은 차별이 이 사회에 어떻게 만연한지 적나라하게 관객에게 보여준다. 첫 번째는 도리언의 옷에 튀기는 케첩이다. 하얀 옷에 튀기는 붉은색의 케첩은 시각적으로도 자극적이지만 곧이어 이들에게 닥칠 일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다. 짧은 이 장면을 통해 조던 필은 앞으로 일어날 불행을 효과적으로 암시하는 동시에 폭력, 특히 흑인에 대한 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인 것인지 말한다. 식당에서 그저 엄마와 즐겁게 밥을 먹던 도리언은 자신의 죽음을 예상이나 했을까, 겉으로는 아무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 폭력의 잔혹함은 더 극대화된다.
두 번째는 '백인'경관 래스키가 식당에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프라이드치킨 스테이크'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프라이드치킨'이 흑인들의 소울푸드가 된 이유에는 슬프고 비참한 역사가 담겨있다. 노예제도가 합법이던 시절, 노예 주의 눈을 피해 백인들이 먹고 남긴 닭 찌꺼기를 뼈째 쉽게 먹기 위해 기름에 튀겨 먹은 것에서 유래한 프라이드치킨은 더 이상 흑인들의 것이 아니다. 프라이드치킨을 먹으면서 흑인들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역사는 가슴 아프지만 그만큼 잊기도 쉽다. 흑인들의 소울푸드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백인의 모습을 굳이 카메라에 담았던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슬픈 역사를 잊은 채 살아가는 일부 흑인들에게 주는 경각심이 아니었을까. 교육부터 문화까지 '흑인들의 것들을 망가뜨리는 백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다소 자극적인 연출 방식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오히려 백인 경관 역을 맡은 Glenn Fleshler 배우의 외형이 워낙 만화적으로 보이다 보니 이런 불편함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미장센인 캠코더가 있다. 캠코더 혹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묘사되는 또 다른 이들의 '눈'들은 바로 미디어를 상징한다. 더 이상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약자는 없다. 현대 기술의 가져다준 가장 큰 이점은 바로 모두가 언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묵인하지 않는다, 방관하지 않는다. 더 이상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미디어는 음지에 놓일 뻔한 이슈들을 공공영역(Public Shphere)에 전시하고 또 다른 약자들의 시선을 불러일으키고, 같은 처지에 있던 약자들을 함께 뭉치도록 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은 또 다른 잠재적인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지만 적어도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그 순기능에 집중하고 있다.
결말부에서 셋은 결국 닐의 선견지명 덕에 셋은 도리언의 학교에 도착한다. 안심도 잠시, 곧이어 이 들 앞에 나타난 건 몇 번이 넘는 시간 여행 동안 끈질기게 이들의 길을 방해했던 경찰 래스키 경관이다. 래스키 경관은 또다시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셋을 체포하려 하며 총구를 들이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했던 니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불과 몇 분 전만 하더라도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타인이었던 사이가 같은 인종이라는 배경 아래서 연대했을 때 타인은 우리라는 거대한 존재가 되어 부당함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조던은 니나가 개인이 아닌 단체로서 연대하여 차별이라는 억압을 이겨내는 모습을 통해 비단 인종적인 문제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약자들이 하나로 연대해야 이 거대한 시스템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약자들이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화해할 때 그때서야 비로소 '연대라는 것'은 힘을 발휘하고 폭발적인 동력으로 나아간다.
슬프지만 이번 에피소드 또한 행복한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여운도 쉽게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아들 도리언은 자식을 갖고 니나 또한 할머니가 된다. 그러나 아직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니나는 그동안 한 번도 캠코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 짧게 지나가는 도리언의 말에서 언급된다. 그때 손녀딸의 부주의로 캠코더는 박살이 나고 더 이상 되감기 버튼은 작동하지 않는다. 도리언은 니나를 안심시키며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문밖으로 나선다. 잠시 후 밖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카메라는 사이렌의 불빛으로 번쩍이는 도리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에피소드는 끝이 난다. 이런 결말을 통해 조던은 에피소드에서 일어났던 모든 갈등들이 끝나버린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현재임을 상기시킨다. '리플레이'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이지만 증오와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현재에도 '리플레이'되고 있는 현실임을 알리기 위해 이번 에피소드의 제목이 <리플레이>였던 것이 아닐까. 이 모든 이야기는 역사책에 나 등장하는 단순한 과거가 아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임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