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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Apr 08. 2021

세상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가치

어느 날 멍하니 인스타를 보다가 이런 글을 보게 됐다. 홈쇼핑 방송에서 ‘매진’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경우는 바로 전체 제품의 80%가 판매 완료됐을 때만 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홈쇼핑 방송을 항상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 ‘매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경우 심의위원회에서 확인 전화까지 하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다는 글이었다.


글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뭐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었다. 하나의 단어 때문에 위원회라는 조직이 나서서 팩트체크를 하고, 확인 전화까지 한다는 사실이 좀 과한 대응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하다고 느껴지는 그들의 절차는 바로 소비자인 나를 위한 것들이었다. 내가 부탁하기 이전에, 이런 사소한 것들로 피해를 본 누군가의 요구 덕분에 ‘불필요한 절차’는 ‘당연한 절차’가 되어 우리의 일상에 한 부분에 자리 잡은 것이었다.


불시착한 비행기에서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생존한 사고 일명 ‘허드슨 강의 기적’을 영화화한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선 이런 불필요한 절차로 보이는 것들이 화면에 자주 등장한다.


다들 대피하고 텅 빈 기내에서 혹시라도 낙오된 사람이 있을까 봐 물속으로 가라앉는 비행기에 홀로 남아 수색하는 기장 설리의 모습부터, 이미 전원 생존으로 마무리된 사고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미연방 교통안전 위원회의 조사관들까지.


그들은 모두 ‘쓸데없어 보이는 절차’들을 무시하지 않은 채 착실하게 밟으면서 진행하고 있었다. 이미 끝난 결과물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적법하게 만들어졌는지, 혹여라도 부정한 과정은 없었는지 꼼꼼히 따지는 것. 목놓아 ‘빨리빨리’만 외치며 효율성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 사회에 그 여느 때보다 필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어 보이는 것’이 하나 둘 뭉쳐 이 사회를 지탱하는 단단한 기초가 된다는 것을, 오랜만에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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