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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May 07. 2021

그래도 오늘도 밥 한 끼 했다

오뚜기 푸드에세이 공모전 참가작품

”하 보급관 이 자식은 오늘도 컵밥이네. “      


 누군가의 한탄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모두의 손에는 노란색 오뚜기 컵밥이 눈치 없이 애처롭게 들려있었다. 야근자 부식으로 오뚜기 컵밥이 나온 지도 어느덧 다섯 달째, 그나마 사흘에 한 번씩 먹는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그런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느새 내 손은 컵밥의 비닐 포장을 아무 생각 없이 거칠게 뜯고 있었다.      


 ‘20xx 년 6.17일까지’ 올해 6월까지라고 적혀있는 유통기한이 내 시선을 끈다. 전역하는 날까지 이걸 먹을 생각을 하니 괜히 울적해진다. 뚜껑을 벗기자마자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익숙해질 듯 익숙해지지 않는 이 냄새는 전역 후에도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렇게 불평이 쏟아졌던 것도 잠시, 어느새 시곗바늘이 12시를 넘기자 배고픈 선임들 몇몇이 슬슬 일어선다. 그들의 손에는 역시나 컵밥이 들려있다.     

 

 컵밥은 참 신기한 음식이다. 불평불만에도 컵밥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더 맛있어지지도 않고 더 맛없어지지도 않고 항상 그 자리에 놓여서 늘 같은 맛, 같은 냄새, 같은 모습을 하고선 우리를 기다린다. 뜬금없게도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해주는 밥은 마치 컵밥처럼 맛이 있지도 없지도 않은 오묘한 경계선에 서 있는 음식이었다. 그런 밥을 엄마는 한 술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바쁘게 문을 나서는 나를 항상 붙잡았다.


 엄마는 밥 한술 먹을 여유도 없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바쁜데 억지로 밥 한술이라도 먹이려는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밥은 단순히 음식이 아닌 정성이었다. 당신의 자리에서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정성이었다. 시간이 지나 더 이상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먹지 않고 내가 충분히 해 먹을 나이가 됐을 때도 엄마의 전화 첫마디는 늘 ”밥 먹었어? “셨다.


 그 한마디에는 그래도 굶지 않고 잘 먹고살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과 당신의 부재에 혹여나 아들이 고생이라도 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담겨있었다. 아들은 그 뜻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 척하고, 바쁘게 사는 척했다. 그렇게 한없이 달리고 달리다가 군대라는 벽을 만나고 나서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첫 짬밥을 먹을 때도,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 속에서 밥을 먹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던 감정은 싱겁게도 컵밥을 먹으면서 흔들렸다.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워진, 이름도 모를 누군가가 만들었을 컵밥에는 당연하겠지만 누군가의 정성이 들어있었다. 이름도 모를 누군가가 먹을 밥을 위해 누군가는 추운 새벽에도 눈을 뜨고, 누군가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굶어가면서, 또 누군가는 정작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한 채 바쁘게 살아간다.


 우리가 가볍게 여긴 컵밥 한 숟가락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이야기들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 굶지 않고 그래도 먹고살 만큼 살 수 있다. 따뜻한 밥이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 그래도 살아있다고, 잘은 모르겠지만 살게 된다고 말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먹는 게 삶의 여유가 아닌 생존을 위한 ‘食’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먹고 산다’라고 말하는 게 안부가 아닌 한숨 섞인 한마디가 되어버렸다.


 저마다 오늘도 ‘먹고살려고’ 눈을 뜨고 살아간다. 음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지친 삶에 여유를 찾고 살아갈 힘을 주고 한 걸음 더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습관처럼 내뱉는 내 첫마디도 어느새 엄마처럼 ‘그래서 밥 먹었어?’가 됐다. 굳이 밥이 아니어도 괜찮다. 누군가가 해준 정성 가득한 집밥 대신 라면이어도 좋다. 중요한 건 밥은 먹고 다닐 정도로 빡빡하게,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만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숨겨진 의미를 당신이 빨리 알아차리길 바란다.


 오늘도 바쁜 근무 중에 그래도 밥 한 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정신없이 사는 와중에도 숨 돌릴 여유가 주어진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만큼의 정성은 아니더라도, 바코드 뒤에 숨어있는 게 차가운 기계 덩어리가 아닌 따뜻한 사람 손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컵밥은 그제야 밥이 된다.     

 당신의 하루에도, 나의 하루에도, 그래도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길 바란다. 하루에 끝에서 그래도 오늘도 밥 한 끼 했다며 스스로를 안아 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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