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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Jun 14. 2021

라이프 사진전: 더 라스트 프린트 후기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


영화 <월터의 현실은 상상이 된다>에선 라이프의 모토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매일 쳇바퀴 같은 삶을 살며 자신의 인생이 특별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월터는 이 하나의 문장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다. 자신의 인생은 늘 새로운 것이 없어 보이고 반복되는 일상으로 차있지만 그것이 타인의 시선에서, 셔터에 담기는 순간 그 어떤 예술 작품보다 빛나는 무언가로 변한다.


이름부터 ‘인생’을 담고 있는 라이프의 사진들이 과연 삶의 어떤 순간들을 담아냈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에 들어섰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인생의 다양한 순간들이 사진으로 찍히고 액자에 걸린 모습을 보자 거장이 그린 명화를 보는 것과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정해진 테마는 없었지만 내가 느낀 전시회의 대주제는 3가지, 바로 정치, 사람, 그리고 반전(反戰)이다.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각국 수장들의 사진과 전쟁터로 행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많이 보였고 그 이후부터는 프랭크 시네트라 같은 유명 예술인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라이프 사진전의 전시물들엔 이름이 없다. ‘체코 프라하의 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수십대의 소련군 탱크 옆을 지나가는 한 택시, 1968’


이런 식으로 사진에 대한 간략한 묘사와 포토그래퍼의 이름만 적혀있을 뿐이다.


이름이 없던 것에 정체성을 불어넣는 것은 의미 있지만 또 다른 벽을 씌우고 대상이 그 정체성에 갇힐 수도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라이프의 이런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철저히 선입견을 배제하고 보는 이가 느끼는 대로 사진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 사진이 왜 예술의 분야 중 하나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진은 공간을 뛰어넘어 현장의 온도를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비록 말을 하지 못하지만 그 침묵 속에 응어리진 힘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렬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런 강렬함을 전시장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느낄 수 있었다. 줄무늬 옷과 당장이라도 망가뜨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연약한 철조망, 그리고 그 사이를 넘지 못한 채 바라만 보는 더 연약한 사람들.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오른쪽에 위치한 지팡이를 붙잡고 서있는 남자의 눈빛이었다. 공허해 보이면서도 보는 이의 마음을 뚫는 것 같은 강렬한 눈빛. 우리는 감히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의 감정은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사진은 감정을 전달해 주진 않는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사진도 변한다. 과연 내가 느꼈던 감정은 저 사람의 감정과 얼마나 맞닿아있을까?


일주일 동안 해야 하는 집안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한 주부의 모습이다. 처음 이 사진을 봤을 때는 저 미소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포토그래퍼의 주문이었다기엔 너무나 자연스러운 얼굴인 데다 굳이 이 사진을 찍은 의도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전시를 구경해서인지 어느새 출구가 보이자 다시 한 바퀴를 돌기로 결정하고 이 사진을 본 순간 아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타인에게는 힘든 집안일에 불과하지만 그 일을 해내는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 마치 모든 영화 촬영을 마치고 스탭과 배우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는 감독의 모습 같아 보였다.


그저 의미 없는 노동이 아닌 어쩌면 누군가에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자 삶이 비로소 의미 있는 순간이 되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분명 기승전결이 없는 예측 불가능한 막막한 하나의 장편 영화다. 그러나 그것을 쪼개어 단편들로 본다면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

마지막으로 제일 좋아하는 사진과 함께 마무리하려고 한다. 한 호텔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 불쇼이 발레단의 무용수와 그 옆에는 설명조차 적혀있지 않은 한 사람이 청소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진이 우리의 삶을 압축시켜놓은 것 같아 여운이 짙었던 사진이다. 멀리서 보기엔 단순히 상반되는 감정이 하나의 사진에 담긴 것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각자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각자의 삶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순간 우리의 모습은 다른 이들의 모습과 함께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그 어떤 삶도 다른 삶보다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삶들이 얽히고설켜서 굴러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그 얽힌 것들을 풀어가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삶과 섞이게 되는 것, 그것이 인생이며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다.


인생의 목적은 바로 인생 그 자체에 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결말처럼 자신에게는 별거 아니었던 삶이 누군가에겐 값비싸고 결코 얻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은 나의 삶 그 자체이기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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