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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Oct 28. 2021

강남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병원에서 의료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아저씨는 혼자 팻말을 들고 병원 앞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병원 앞에는 거짓 주장을 멈추라며 아저씨가 쓴 팻말의 내용을 요목조목 반박하는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사람들은 흘낏 흘낏 아저씨나 현수막을 쳐다봤지만 이내 금세 시선을 핸드폰으로 돌리더니 이어폰 속에 몸을 묻은 채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정글. 갓 군대를 전역하고 간도 크게 강남에 원룸을 구한 내가 만난 강남의 첫인상이었다. 강남은 재수학원 건너편에 술집이 즐비한 유흥가가 위치한, 모순으로 뒤덮인 이상한 도시였다.


원룸형 아파트인 우리 집에 어떻게 외제차들이 가득한지, 점심시간이면 정장읍 입고 한 손에 커피를 든 무리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마치 영화 <버닝>에서 재력가인 스티븐 연을 바라보는 어딘가 얼빠진 종수의 얼굴처럼 강남에서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 얼굴은 누가 봐도 이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딘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직업도 없이 자소서를 끄적이던 백수 시절 헬스만은 꾸준히 했다. 군대가 만들어준 좋은 습관 중 하나였다. 아무리 하루를 게을리 보내도 저녁 시간, 잠들기 전 헬스장에서 땀 흘려 운동을 하고 밤거리를 나서면 내가 누구보다 이 정글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마 그 착각을 즐기기 위해 운동을 빼먹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다행히 원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내게 여전히 강남은 종 잡을 수 없는 도시다. 낮에는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지만 해가 지면 그 많던 회사원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은 채 각자의 쾌락에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


각자의 정글에서 모두들 치열하게 살아간다. 여기에 내가 있다고, 알아달라고 속으로 소리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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