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원

가난

by 김인현


어릴 적 나에게 오천 원은 큰돈이었다. 그때가 아마 열한 살이었으니까, 90년대 후반이었지. 갑자기 잘살고 있던 서울의 조그만 동네에서 갑자기 경기도로 이사하고 난 후였다. 내 딴엔 시골로 이사 왔다고 신났었다. 아마 언니도, 동생도 그랬던 것 같다. 아마 아빠가 먼저 지내던 곳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사한 우리집은 다락방도 있는 주택이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다 크고 엄마랑 얘기해 보면 엄마는 그때가 제일 힘들었단다.


우리가 가난한 건 느끼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넓은 집에서 거실이 없는 빌라로 이사 가고, 빌라에서 방 한 칸에 주방과 화장실이 있는 반지하 방으로 이사 가면서 점점 돈이 없어 먹고 싶은 걸 못 먹고 준비물 살 돈이 없어 학교를 여러 번 결석했었다. 어린 나는 준비물 꺼내라 할 때 가만히 있는 나를, 결국엔 빌려서 해야 하는데 친구들도 그 시간에 필요한 거였기에 빌리기도 미안했던 나를 창피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없는 준비물이 필요한 날이면 학교에 간다고 거짓말하고 모두가 없는 빈집으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친구들과는 더러 잘 지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동네 구석의 남의 집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던 나랑 놀겠다고 온 친구들이 신기하다. 반장과 친구들 몇 명이 우리집 문 앞에서 놀자고 부르던 기억이 아직도 뭉클하다. 어찌나 노는 걸 좋아했는지. 그래서였나, 시골로 이사 가니 온통 놀 것 투성이라 그 1년의 기억이 행복하다. 겨울이면 집 뒤 언덕에서 포대자루로 눈길에 미끄러지고, 여름엔 집 앞 작은 천에서 물놀이하다가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 엄마는 마당에서 자란 부추를 잘라 부추전을 해주고, 아빠 회사에 놀러 간다고 지나가던 차를 세워 그냥 태워달라고도 해봤고, 오디가 나는 때만 되면 친구들이랑 검은 봉지 들고 나가서 손끝이 까매지도록 따와서 먹었다.


그 당시의 엄마는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아빠 사업이 망해서 남은 것 없이 이사하게 되다 보니, 우리를 다른 곳에 맡길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안 간다며 떼를 써서 같이 계속 살았다는데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다닌 학교는 결석하진 않았던 것 같다. 사실 학교가 너무 집 앞에 있기도 했다.


너무 춥지도 않고 너무 덥지도 않은 날이었다. 무슨 준비물을 샀어야 했는데(아마도 스케치북과 그런 것들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아빠가 한숨을 쉬면서도 오 천 원이면 되냐며 출근도 안 하고 나와 함께 학교 맞은편 문방구를 같이 가주었다. 같이 가면서도 아빠는 나한테 오천 원 한 장을 쥐어줬던 것 같다. 기분 좋게 준비물을 고르고 문방구 주인에게 보여주니 딱 오천 원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아빠가 나를 보며 돈을 내라고 했었는데 어디에 떨어트렸는지 나에겐 오천 원이 없었다.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데, 아빠가 짜증을 내면서도 화를 내진 못했고, 나는 당황스러운 것보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아빠한테 너무 미안하고 또 준비물을 가져갈 수 없어 서러웠다. 분명 아빠는 나한테 오천 원 한 장을 모처럼 준비물 사라고 주고 같이 가줬는데, 내가 그걸 잃어버린 거니까 속상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문방구를 나와 학교로 들어가는데 아빠는 괜찮다는 말도 없었다. 나도 괜찮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의 아빠한테는 가지고 있는 현금 전부였을 수도 있다. 그걸 나는 기억에도 없이 잃어버린 것이고. 그때 그 기억은 아직도 약간의 각색된 장면과 느낌으로 남아있다.



최근에 일하다가 새로 온 외국인 선생님이 같이 점심을 먹고서 내가 계산하고 선생님이 먹은 돈은 나에게 현금으로 주었다. 그게 육천 원이었는데, 오천 원 한 장과 천 원 한 장, 두 장을 그날 바로 받았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두고 한 이틀을 신경 쓰지 못한 채 다녔다. 그러다가 집에서 가방을 정리하는데 가방 앞주머니엔 천 원 한 장만 있었다. 가방 어디에도 오천 원이 없는 걸 보아 어딘가 떨어진 듯했다. 그걸 알게 된 순간에는 아쉬운 마음 다음으로 잘 챙겨놓지 않은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미련이 사라졌다. 그리곤 남아있던 천 원을 카드 지갑에 꾸겨 넣었다. 그리고 오늘 그렇게 꾸겨 넣어 둔 지폐들을 보면서 이게 어디서 난 건지, 얼마인지도 신경 쓰지 않는 나를 느끼면서 문득 열한 살의 오천 원이 생각났다. 그래도 나는 학교를 다녔고, 아빠는 일을 다니면서 우린 다 같이 살았기에 지금 나는 가난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