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몽>
당신이 수도권에 사는 학생이라면 등하굣길에, 직장인이라면 출퇴근길에 보았을 ‘지하철 노선도’이다. 수많은 역들이 자신만의 길을 이으며 노선을 만든다. 지하철은 자신의 길을 통해 각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1920년대 조선독립운동도 이처럼 다양한 노선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립을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독립운동노선이 지하철 노선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모든 노선이 독립이라는 큰 목표가 있는 동상이몽’이었다는 점이다.
드라마 <이몽>은 영화에 버금가는 200억의 제작비, ‘유지태’, ‘이요원’ 등의 탑스타를 기용했다. 그러나 방영 첫날 우리의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운 시청률을 보여주었다. 기존 MBC주말 특별기획드라마 시청률이 10%~2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두에게 큰 실망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모든 것은 과유불급이다.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식 후원 드라마’로 선정되어 긴장했을 수도 있다. 동시간대에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경쟁작 <녹두꽃>의 존재를 의식해서 조급했을 수도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드라마 <이몽>은 여러 의미에서 욕심을 부렸다는 사실은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들이 미드에서는 주어진 일만하고,
일드에서는 교훈을 주고,
한국 드라마에서는 사랑을 한다."
라는 말처럼 한국 드라마에서 사랑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시청자에게는 ‘멜로가 없는 드라마는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니까. 그러나 <이몽>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너무 부자연스러운 사랑이었다. 상대방이 좋아진 계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미흡했다. 별다른 설명이나 개연성 없이 검사 ‘후쿠다’와 독립투사 ‘김원봉’이 간호사 ‘이영진’에게 사랑에 빠져버렸다. 뜬금없는 사랑이야기에 순간 ‘내가 뭔가를 놓쳤나?’라는 생각에 드라마를 다시 한 번 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너무 뜬금없이 사랑에 빠지는 남자주인공들을 보며 둘 다 ‘금사빠’인지, 아니라면 ‘이영진을 이용하려는 목적 때문에 좋아하는 척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의문만을 남기는 ‘이런 사랑’을 표현할 바에는 로맨스 서사 없이, 최근 흥행한 영화 <걸캅스>처럼 본 작품이 가지고 가는 주제만을 다루는 게 나을 법하다고 느꼈다.
적당한 갈등은 극에 활력을 불어넣지만 수많은 관계와 갈등은 정보의 홍수를 생성하여 오히려 작품에 독이 될 수 있다. 물론 기본적인 선과 악의 대립은 무장투쟁만을 생각하는 ‘김원봉’과 이를 제지하려는 형사들을 포함한 ‘일본인’으로 설정되어있다. 그러나 드라마가 전개될수록 숨겨진 그들의 관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왼쪽은 의열단의 태극기, 오른쪽은 김구의 임시정부 태극기이다.
태극기의 생김새가 서로 같은가?
아니다. 태극무늬의 방향도, 팔괘의 위치도 서로 다르다. 당시에는 통일된 태극기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태극무늬와 팔괘의 개념만이 존재했다. 우리는 이 다른 모습을 한 태극기들에서 드라마가 보여주는 ‘노선의 홍수’로 표현할 수 있는 복잡한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이 관계에는 김구의 노선, 김원봉의 노선, 코민테른 노선뿐만 아니라 ‘돈’의 흐름에 의한 갈등까지 존재한다.
독립투사들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서까지도 세력다툼을 보여준다. ‘여의사 에스더의 일본군 육군 소장 나구모 암살 시도’ 사건에서 검찰과 경찰들이 ‘이영진’을 이용하여 세력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미 독립운동의 노선들만해도 충분히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일본인들도 갑자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상황까지 겹치게 되었다. 이제 갈등은 끝날 줄 알았겠지만 상하이의 ‘청방’과의 새로운 갈등도 시작되었다.
이제 ‘한 명’의 등장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그의 노선’을 생각해보며 그 사람에 대해 파악해야한다. 따라서 시청 중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이지?’에 대해 생각할 때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시간의 지연은 시청자를 드라마의 서사 속에 스며들게 하지 못하게 한다. 아니, 오히려 튕겨 나오게 한다.
‘실제 과거에 있었던 사건’처럼 수많은 이해관계 속 주인공들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메인 노선으로서의 중심 플롯이 있는 상태에서 ‘간선과 지선’이 존재해야 한다. 복잡하게 얽힌 플롯을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2시간의 러닝타임도 <이몽>의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한 번에 2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문제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영화관에 갇혀서 2시간 내내 영화만 집중하며 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TV를 시청할 때는 어느 장소에 갇혀있지도 않다. 하지만 23.9%의 시청률을 기록한 ‘돈꽃’을 비롯한 작품들이 2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지고도 선방해 온 것을 보면 ‘2시간’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2시간이 <이몽>의 복잡한 인물관계와 만나면 문제가 생긴다. <이몽>은 수많은 사건의 정보들을 2시간 동안 시청자에게 주입한다. 어떤 시청자도 2시간 동안 끝까지 집중하며 볼 수 없게 만든다.
좋은 컨텐츠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기준 중 하나가 ‘우리 사회에 담론을 던져줄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비록, 욕심을 부렸고, 너무 복잡한 관계를 가진 드라마이지만 ‘담론적 가치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 드라마는 충분히 좋은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MBC <이몽>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드라마보다 더 뜨거운 시청자들의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주인공 ‘김원봉’은 이 드라마가 나오기 이전부터 ‘월북을 한 인물’이기 때문에 이념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논란이 많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제작진들도 이를 알고 경계해왔다. 윤상포 PD는 "김원봉이란 인물이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고 의열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는 이런 논란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독립운동은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본인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한다.
시청자들의 입을 통해 <이몽>은 ‘김원봉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하는가?’라는 질문을 사회 속으로 가져왔다. ‘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닌,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며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시청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시각으로 <이몽>을 보고난다면 ‘당신은 진정한 독립운동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지하철 노선도 https://www.sisu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