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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Dec 06. 2021

만들어진 이들의 경쟁 : SNS

르-르네상스 : 다시, 인간으로 3


  SNS(Social Networl Service)는 화면 속 우리의 또 다른 삶들이 살아가는 세로운 세상이다. SNS는 멀리 있어서 만나지 못하는 보고싶은 사람들이나, 과거에 만났지만 지금은 잊고 있던 기억 속의 사람들을 모두 만나게 해주는 새로운 광장이 되었다. 나아가, 실제로는 만날 수 없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엔서와의 소통도 가능하게 해준다. 실제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물리적, 공간적 장벽을 허물었다. 그런 광장 아래, 우리는 자신의 삶과 닮은 자신의 계정으로 SNS에서 일상을 공유하고, 순간을 나눈다.

그런 SNS는 다양한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다. 짤막한 동영상이 중심 콘텐츠인 페이스북, 사진 중심의 인스타그램처럼 각기 다른 것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하나의 플랫폼 안에도 순간을 잠시동안 기억하는 스토리,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는 피드/게시물 등이 존재한다.

이러한 글들은 좋아요로 평가받게 되고, 자신의 인기는 팔로워 수로 증명이 된다. 남들과의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남들과의 차이를 비교에서 발견하기에, 숫자가 적은 사람들은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우울해하거나 자책하기도 한다.

자신의 삶과 경험의 공유라는 목적은 사라지고, 남들과의 비교와 그 비교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과 사람의 시간을 팔다



2021년 시가총액 상위 n등은 페이스북이 차지했다. 애플이나 삼성같은 회사들은 값비싼 물건을 만들기에 수긍할만하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무엇을 파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을 팔기에 저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것인가.

광고 매출은 SNS 기업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광고로 수익을 버는 법은 간단하다. 이용자와 이용자의 시간을 광고주에게 팔면 된다.

SNS 기업은 이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한다. 우리가 자주 들어가는 해시태그나 피드의 종류를 분석한다. 그렇게 이용자 각 개인의 평소 관심사와 관련있거나 최근에 찾아본 아이템과 같은 카테고리의 광고를 노출시킨다. 광고를 노출시킬 때마다 '노출된 사람×노출된 횟수'만큼 광고주에게 돈을 받게 된다.

사실 우리가 알던 '일상을 공유하고, 경험을 나누세요!'라고 외치는 SNS는 모두 가짜이다. 새로운 사용자를 데려오거나 많은 태그를 사용해서 SNS를 활성화시키는 주역이 아니라면, 회사는 당신의 일상에는 큰 관심이 없다. 밝고 당찬 모습을 공유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플랫폼이 아니다. 그저 광고주에게 이용자를 판매하는 영리기업일 뿐이다.



(알림)



어느날 당신의 스마트폰이 알림이 뜬다. 당신의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번호를 가진, 당신의 지인일지도 모르는 이 사람을 아느냐는 SNS의 질문이다.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이름 같아서 들어가본다. 그 사람의 피드를 찾아보니 어렸을 적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러고는 습관적으로 새로 올라온 피드를 훑어본다. 엄지를 계속해서 내려가며 새로고침을 반복한다.

가만 보면 요즘 사람들에겐 병이 있다. 엄지로 스크롤을 하여 피드를 최신화하는 병이 생긴 것만 같다. 피드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사람의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주변 인물이라는 것은 얼마나 더 흥미로운 일이 되겠는가. 엄지를 튕길 때마다 바뀌는 피드들이지만, 어차피 새로운 피드들은 몇 장의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이니 부담도 없다. 계속해서 새로운 재미있는 것들을 찾고 싶어서 그럴 테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이다.

스크롤로 새로고침을 하고 위에서 아래로 쭉 읽다보면 나를 위한 추천 게시물이 나타난다. 어떻게 알았는지 나의 관심사와 관련된 피드가 뜨고, 나는 홀린 듯 계속 찾아본다. 그렇게 수십 분이 흐른다.

이 모든 일은 하나의 알림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알림은 오랜 친구를 알려주는 알람일 수도, 친구의 태그일 수도, 인플루엔서의 라이브 방송 알림일 수도, 내가 받은 좋아요의 알림일 수도 있다. 잠깐의 알람에 우리는 SNS에 왜 들어왔는지 이유조차 모른채로 수십 분을 보내며, 그 사이에 수십 개, 수백 개의 광고에 노출된다. 광고를 스스로 시청하고자 하는 줄도 모르고, 거부감 없이 광고에 자발적으로 노출되고자하는 사용자들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사용자들을 보며 흐뭇해할 것이다.


SNS의 다양한 기능들은 더 많은 사람을 더 오랫동안 자신의 플랫폼에 가두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야만이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심심할 때마다 울리는 SNS의 알람부터, 다른 사람을 태그하는 기능까지. 피드를 올리기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을 위해 스토리라는 휘발성 피드도 만들어낸 인스타그램이겠다.

심지어 태그와 같은 경우는 SNS에게는 불로소득이다. SNS가 딱히 무얼 하지 않아도,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를 SNS 속으로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아서 자신의 지인을 광고의 광장에 불러내는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오늘도 우리는 스스로를 시장에 팔고 있다.



광고와 콘텐츠의 흐릿한 경계


요즘 광고는 상당히 정교하다. 정교하기보다 애매하다. 광고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광고들이 즐비하다. 콘텐츠의 광고화와 광고의 콘텐츠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광고들을 경계해야 한다.

TV의 광고는 분명하다. 프로그램의 사이사이에 떡하니 광고 시간이 주어지고, 소구도 분명하다. 누가 봐도 광고인지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하지만, SNS에서는 흐릿하게 보인다. 하나같이 콘텐츠로 둔갑해 있다. 어떤 커뮤니티의 댓글들의 모음인 것처럼 실제로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특정 제품을 사용하고 후기를 남긴 것처럼 만든다거나, 건강을 생각하는 카드뉴스를 만들면서 그 사이에 광고 물품을 억지로 끼워넣는 방식이다. 날카롭게 살펴보면 사이사이에 섞인 어색한 글꼴이나 어색한 내용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자세히 보지 않고 평범한 일반적인 피드들을 보듯 가볍게 보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광고가 아닌 콘텐츠로 인식하게 되면, 물건을 팔고자하는 사람이 만들어낸 허풍이 아닌, 실제 사용자의 솔직힌 후기로 둔갑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그 특정 제품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기가 많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수도 있고, 카드뉴스의 형식만을 보고서는 그 광고가 과장 광고임에도 모르고 올곧은 정보라고 믿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이미 충분히 애매한 광고와 콘텐츠의 경계이지만, SNS의 소비행태는 이를 가속화한다. 몇 장의 사진과 짧은 동영상을 시청하듯 생각없이 바라보는 버릇과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새로운 광고 콘텐츠들로 다시 머리속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새로고침병까지.



숫자의 함정



'좋아요'라는 버튼이 생긴 이후부터, 팔로워 수가 모두에게 보이기 시작한 이후부터 우리는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보이는 SNS라는 공간의 특성상 버튼의 숫자는 단순한 숫자 너머의 의미를 갖는다.



4.1 팔로워 수 = 허수



SNS가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숫자이다. 화면 밖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비교할 만한 척도가 없다. '얘는 원래 이런 애, 쟤는 얘보다 조금 더 착한 애'같이 상대적인 비교만 가능했다. 하지만, SNS에서는 절대적인 척도가 있다. 팔로워 수와 좋아요 수는 화면 안에 있는 삶들의 높낮이를 보여준다. 우리는 수백 수천명의 팔로워를 가진 이들을 동경하고, 그들처럼 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런 심리를 이용한 인스타그램은 사용자에게 팔로워 수를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 툴들을 만들었다. 휘발성인 스토리와 비휘발성 스토리인 피드나 숏폼 콘텐츠인 릴스도 만들어 내었다. 이처럼 절대적으로 우위를 가릴 수 있는 공간에서 더 큰 숫자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이를 부추기는 SNS이다.

만약,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본인의 머리 위에 자신의 친구 수가 나타난다면, 그 누가 좋아할 것인가. 세상의 모든 과학자들은 그런 현상을 없애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것이다. 누구는 머리 위를 천으로 덮고 다니거나, 집에서 밖을 나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런 재앙과도 같은 모습을 우리는 SNS에서 자발적으로 수행한다.


사실, 팔로워 수가 많다고 해서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수백 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이 정말 당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만들어진 화면 속의 당신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많은 팔로워를 가져도, 힘들 때 위로를 받을 사람이 곁에 없다면 그 숫자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



4.2 좋아요 : 감정의 디지털화



'좋아요'라는 버튼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모든 피드에 습관적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부터 그 어떤 글에도 누르지 않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좋아요'의 숫자도 우리의 평판을 만들어내는 요소 중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다.

버튼으로 감정을 나타낼 수 있을까? 그 피드가 10%만 좋다면, 혹은 70%만 좋다면 그런 감정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눌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리의 감정이 '좋아요'와 '그렇지 않아요'로만 표현될 수는 없다.

'좋아요'는 의무적 휘장이다. '좋아요'는 호혜성을 갖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는 것은 품앗이처럼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눌러주지 않으면 자신도 누르지 않거나, 눌러주면 다시 눌러주어야 하는 것이 예의가 된 것 같다.

또한, '좋아요'의 수는 한 계정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이기에 우리의 휘장이 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내서 팔로워가 늘어났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많기만 하면 된다.

이런 의무적 휘장이 되어버린 '좋아요' 문화는 어쩌면 성스러울지도 모를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같이 이익을 두고서 관계를 잇는 반-관계적인 모습을 띄기도 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는 정이나 따뜻한 관계를 찾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좋아요)


'좋아요'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버튼의 이름 그대로 나의 피드를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만들었다겠지만, 사실 '좋아요'를 받으면 알람이 울린다. 그 알람은 나를 SNS에 초대한다. 그 버튼은 평가의 척도뿐만 아니라, 기업이 당신에게 보내는 광고로의 초대장이 되기도 한다.

'좋아요'를 받으면 돌려주는 것이 예의이기에 나는 나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를 찾아가 그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도 새로운 알람이 간다. 다시 우리를 광고주에게 파는 뫼비우스의 시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만들어진 나'들의 전쟁



더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화면 밖 일상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더욱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경험하기 힘든 경험을 보내고, 찍어올린다.


SNS 속 시간은 불연속적이다. 게시물과 게시물의 간격에 오랜 시간이 있다고 해도, SNS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은 두 장의 사진으로 그 사람의 일생을 평가받는다. 몇 장의 사진뿐이라지만, 보는 사람들은 별 생각없이 그의 인생이 그 사진처럼 흘러갈 것이라 짐작한다. 게시물과 게시물 사이를 그들의 상상으로 채운다.



a     d            k    :  SNS의 불연속적 삶  

abcdefghijk   : 실제 세상의 연속적 삶



그래서 게시물에는 아름다운 것들 많이 올리고자 노력한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이를 간직하기 위해서 피드를 올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피드를 올리기 위해서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경험을 하려고 노력한다. 피드를 위해서 일상을 조정한다. 그 아름다운 장소와 경험을 몸으로 오롯이 느끼기도 전에 사진을 찍거나 고르는 일은 결국 나의 소중한 경험을 망치고야 만다.






시작은 아름다웠지만, 끝은 돈뿐이다. 일상을 공유한다는 건강하고 활기찬 광장에서, 일상이 종속되는 광고 시장가 되었다. 간직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순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 남겨두기 위해 일상을 조종하는 목적의 전도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비교에 미치게 하고, 병을 주고서도 SNS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조용하게, 바깥 세상에게 위험성을 알리지 않는다. 게다가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이기에 더 할말도 없다. 우리가 자각하지 않으면 빨려 들어가고 만다.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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