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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Nov 05. 2022

이태원, SPC, 군대 모든 곳의 그림자

배운 것이 없는 우리는 바뀔 수 있을까?


또, 또, 또, 또



누구의 책임인가?


 싸운다. 또.


 참사인지 사고인지를 다툰다.

 희생자인지 사망자인지를 다툰다.

 그래, 언어가 가진 힘이 크기 때문이겠지. 결국 정치싸움으로 변질되었다. 보수 측은 경찰의 잘못으로 몰아갈 것이다. 진보의 '검수완박'을 완벽히 부술 수 있는 기회이자, 모두 보수 측의 사람인 지자체장과 대통령을 지킬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보 측은 지자체장과 대통령의 잘못으로 몰아갈 것이다. 모두 보수 측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구조적으로 정부의 책임이 없지는 않기 때문에 승산이 있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각 진영의 색을 가져온 언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날의 원인을 제대로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없다. 어떻게 벌어진 건지 자세하게 알려준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내가 봤던 뉴스는 사람이 엄청 몰린 끔찍했던 현장의 영상들, 책임을 서로에게 밀면서 사고에는 관심이 없는 인간들, 그날 사람을 더 구하지 못했던 의인들의 절규, 많은 이들의 애통함뿐이었다. 그날의 원인을 조목조목 따진 기사는 제대로 접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생을 마감한 이들을, 그들의 가족들을 감히 위로할 생각은 없다. 그 어떤 말로도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줄 수 없다. 남아있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나아진 시스템과 나아진 국민의식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과밀 문제가 심각한 지하철, 축제 등을 점검한다는 계획은 접했다. 서류상으로만 점검하지 않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이루어내야만 할 것이다.


 한심한 사람들아, 땅에서 울리는 지나간 이들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가.



반복, 그리고 반복


반복된 사고


 spc에서 끼임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있었다. 며칠 후에 농심에서도 똑같은 끼임 사고가 일어났다. 같은 식품 제조 업체이자 같은 끼임 사고였다.

 이태원 참사를 다룬 뉴스에서 한 교수가 그랬다. 재난과 사고는 같은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그래서 대비하기 어렵다고.

 그래서, 대비했는가? 청춘이 끼임 사고로 생을 마감했는데, 같은 사고가 똑같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한 명이라서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는가?
 군대에서는 매년 백, 그 이상의 사람들이 생을 마감한다. 평소에도 그 정도 숫자는 군대에서 생을 마감하니까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가?

 이제 헤어질 때 안녕히 가라는 말 대신 안전하게 들어가라고 말할 판이다. 안전하다고 느끼기 어렵다.



 

 그러니까, 바뀔 의지를 갖는 것과 원인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잘못은 논리에 맞추어 찬찬히 찾아가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 이후에는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모이는 사고는 항상 있어 왔다. 몇 달 전 트위터에서 국내의 모 아이돌 축제 때도 과밀된 군중과 관련된 위험한 일들이 있음을 봤었고, 용산구에서 사고가 있고 나서 며칠 후 해외의 KPOP 아이돌 콘서트에서 수십이 실신했다고 한다.

 알고 있었지만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고, 사고가 난 후에도 사람들은 바뀌지 않았다.
 바뀌지 않는 사람들과 시스템. 불타올랐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국민.


 모두의 잘못이다.


 경찰을 무시하고, 평소에도 그들의 통제를 잘 따르지 않던 우리들의 죄. 그날 200명을 추가로 파견하겠다는 기사를 분명히 봤는데 그 숫자도 채우지 못한, 거짓말 한 경찰의 죄. 자발적인 축제이기에 통제를 할 필요가 없었다며 면피를 주장하는 정부의 죄. 여야를 막론하고 사람을 위하기 보다는 자신의 표를 위하는 이들을 흐린 눈으로 계속해서 뽑아온 우리의 죄.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이고 목격자였다. 지금 내가, 우리가, 이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림자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그 그림자는 대구의 지하철역에도 있었고, 저 먼바다에도 있었으며, 북적이는 골목길에도 있었다. 다음번에는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우리가 서로를 등지고 욕하며 화살표를 돌려대는 혐오로만 끝낸다면, 그 그림자는 더욱 커질 것이다. 어쩌면 그 그림자는 애초에 우리가 만들어 낸,  우리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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