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현 Aug 17. 2022

고작, 하루살이

단어와 감정

신촌, 2021

 어떤 선택도 내게 ‘고작’이었던 것은 없다. “인간은 단 한 번도 연습하지 않은 채 무대에 서는 배우와 같다”는 쿤데라의 말을, 내 삶 깊숙이 투과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당시 나는 내 삶을 연습해나가는 중이라고 여겼으므로.


 그러나, 고작 일을 그만두는 것만으로도 나는 오랜 시간 괴롭게 고민했다. 아픈 기억으로 점철된 시간을 지우는 데도 오래 걸렸다. 스스로에게 관용을 허락하는 일도 늘 어려웠다.


 감정을 극도로 몰아붙이고, 이런저런 상황들을 가정하며 수없이 찔려본 이후에야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이토록 괴로운 것도 수긍이 된다.


 경험은 기만적이다. 경험은 없다. 이미 이루어진 사건과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끝난다. 인과도 없다. 사건들을 잇는 시도 그 자체가  다른 사건일 뿐이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나라는 존재를 다시 발견한다. 그저 오늘을 살아서 남겨야, 이 가벼움에 약간의 무게를 더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하루살이처럼 살아야 한다. 다음을 기약하지 말라, 다음은 없으므로.



- 어느 날, 2022

작가의 이전글 가해에 무감각한 나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