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 <가만한 나날>
가만하다
-1. 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한 상태에 있다.
-2. 어떤 대책을 세우거나 손을 쓰지 아니하고 그대로 있다.
-3.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하다.
타인에게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원하는, 그러나 연약하고 나약한 크리스천인 나는 늘 한계에 부딪힌다. 우리는 늘 의식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해가 되니까.
돈의 논리 속에서 기계의 한 부품이 되어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우리가 ‘맞물려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라는 생각을 착상해내기는 어렵다. 그저 서로에게 피해가 되지 않다면 다행일 뿐.
그러나 ’경진’의 화신인 채털리 부인은 아이를 잃은 한 어머니의 완벽한 가해자가 되었다. 기만이 죽음을 낳는다면, 그리고 그 ‘기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직업의 하나로서 인정받고 때로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엉망인 굴레로 돌아가는 세상을 긍정할 수 있나.
쿤데라가, ‘인간 존재는 가벼우나 사랑은 가볍지 않을 수 있다’고 넌지시 말했을 때, 우리는 사랑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세상의 모순과 그 안에 속한 인간 존재의 모순, 그리고 모순을 뒤엎은 예수의 존재 사이 어디쯤에서 우리는 사랑으로 예수의 흔적을 좇아야 하니까.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썼던 글이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세상에서, 갈무리하지 못한 감정이 타인의 자존감을 베어버리는 인간사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쿤데라가 말한 사랑과 예수의 사랑은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일까, 그리고 사랑은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까.
우리가 만든 ‘빠르고 편한’ 나라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무수한 기만과 모순을 낳는다. 그러니 세상에 발 벗고 나서지 못하는, 가만한 하루들이 쌓일 수밖에.
- 김세희, <가만한 나날>, 민음사(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