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일기
브런치와 블로그의 쓰임에 대해 고민하며, 나름대로 정했던 기준은 ‘나’를 드러내는 것과 아닌 것이었다. 그리고 일정한 주제를 붙들고 쓰는 ‘연작’의 성격인지 아닌 지의 여부. 블로그에 쓰던 일기들은 이 두 가지 기준에 포함되지 못했으므로 이제껏 브런치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페이지의 통일성을 해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내가 써왔던 글을 차분히 읽어보며 깨달았다. 글을 쓴 시기의 나는 글을 읽는 현재의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모종의 행간이나 목차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시기의 나를 유추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하여, ‘나’를 드러내지만 연작의 성격을 가진 대학일기를 집필해보고자 한다. 글에 녹아들었던 수많은 고민의 흔적들을 애써 지우지 않기로 하며.
시의를 떠나, 정리가 필요했다. 진퇴(進退)를 고민해야 할 때는 한참 지났으나 여전히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나로 인하여 누군가는 실망했고, 누군가는 불안했음을 안다. 삶에서 소화되지 않는 물음과 욕망을 적어 내려 가며, 만시지탄일지라도 확신을 얻기를 바란다.
내가 나를 속일 수 없음을 잘 안다. 비록 자기 연민의 소산일지라도, 확신이 서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 너를 이해한다. 그래서 꿋꿋하게 써 본다. 바로 걷고, 늦은 발걸음이었던 만큼 뛰기도 하며, 이제는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내가 학벌에 집착했던 이유는 타인에게 책잡히지 않는 언론인이 되기 위해서였다. 나는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처럼 결연한 자세로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고대해 왔다. 어리석은 치기였거나, 자기 비대증의 일환이었을까 싶지만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정의한, 언론인으로서의 일이었다. 기득권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주류 언론사와 담합하지 않고, 단순히 종이에 박제된 문장을 쓰는 것을 넘어 현대인의 삶에 영향력을 미치는 그런 일.
본질적으로는 ‘글’을 쓰고 싶었고 그 글이 영향력을 얻길 바랐다. 종이에 사선을 긋듯이, 시류를 떠받들지 않고 비스듬히 엇나가는 글, 그럼에도 파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글들을 쓰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처럼, 어떤 구획에 담기지 않더라도 존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글을 말이다. 미약한 신문기자로 시작하더라도 언젠가는 시사 주간지를 창설할 것이란 창대한 꿈에 부풀었다. 루돌프 아우크슈타인, 손석희,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우상 삼아 멀리 지나왔다. 때때로 꿈을 잃었고, 다시 되찾는 일에 나의 20대를 대부분 할애하며.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가 보낸 시간은 거대한 바위 같은 짐이었다. 편입 결과를 받아 들고 더 이상 흘려보낼 수 없는 시간이 도래했음을 실감했다. 언론인을 꿈꿔왔던 지난 시간은 찬란했으나, 짐짓 모른 체했던 불가항력은 시간의 짐을 현실로 끌어당겼다. ‘글’을 쓰고 싶다는 순수함이 언론 카르텔의 한 부품이 되어 사장될 것이라는 불안과, 나이에 대한 단상을 떠올렸다. 연세대학교 언론홍보학부를 지원하면서도 리트를 준비하고자 했던 것은 그런 불안을 타개할 한 방이 필요했다고 느꼈던 탓이 크다. 나는 과거에도 현재도 한탕 주의자였다.
그래서 인천대학교에 와서도 연세대학교 편입 논술전형에 예비 2번으로 떨어졌노라 떠들고 다녔다. 아무도 나를 공격하거나 적대시하지 않았으나,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변호하고자 했다. 이제껏 했던 공부를 포기하고 나이에, 가족들 눈치에 떠밀려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힘드니까. 소속되었으나 소속되지 않음으로 진을 쳤다. 어리석게도.
신앙이 결부된 수많은 조언들은 사실 소화되지 않았다. ‘자유의지’와 ‘이끄심’ 사이에는 수많은 해석이 나뉘고, 그것은 인간의 몫이니. 다만 무엇을 기도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는 여전히 중요했다. 나는 “길을 내어주시라"라고 기도했고, 길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방황하며 어린아이처럼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작은 외할아버지의 도움을 통해 자취방을 구했고, 이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됐다. 그리고 때때로 심연에 가득했던, 전문지식을 공부하고 싶던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다. 비록 무역 지식을 다루는 대부분의 강의에서 여전히 갈등하고 의문을 주워 담지 못하고 있으나, 주변 상황은 눈에 띄게 나아졌다.
말 몇 마디 얹을 만큼 이 공부에 아직 진심이지 않았고 노력도 더디었으나, 학문으로서 무역은 ‘쌓아가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경제와 무역을 축으로 하여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파악해야 하고, 경제와 물류에 필요한 기본적인 수학 개념도 내재되어야 한다. 순간의 반짝거림으로 많은 것들이 좌우되었던 논술과 결이 달랐다. 직관이나 휴리스틱(heuristics)은 허용되지 않았다.
솔직해지자면, 이곳에서 단번에 앞서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경쟁을 잠시 포기했다. 나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려 수학을 포기했던 10년 전 학창 시절의 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열심히 해내고자 했던 누군가의 결의를 해쳤거나, 함께하고자 손 내밀었던 선의를 무용하게 만든 것 같아 반성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부재했으므로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
10년 전의 나는 작년의 나와 같이 언론 기자를 꿈꿨고, 작년의 나는 공부를 하며 변호사의 길을 걷겠노라는 포부를 내비쳤다. 직업으로 삶이 설명되지는 않지만 그 삶의 분위기나 색채에 대한 부연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 않던가. 그러나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는 식의 당위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은 이래로 내려놓았다. 나는 언론인이 되지 않아도 된다. 천직(天職)이라던가 사명(使命)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것들을 쥐고 태어나지 않았다.
당위나 기회비용, 매몰비용을 다 내려놓고 순수하게 이 순간에 집중하고자 한다. 부인해 왔지만, 내가 지금 당장 ‘잘’ 하지 못할 뿐이지 무역은 재미난 구석이 많다. 후발주자가 되어 다시 한번 처절한 노력 끝에 멋없고 질척거리는 모습이 되어도 좋다. 허례와 허식을 벗어던지자. 내 삶의 본질은 늘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해, 더 나은 모습의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를 기억하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집필하였지만, 나는 그를 작가라는 직업의 울타리에 가둬서 바라보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곁에 없지만 무수한 질문을 내게 던지는 이웃과도 같다. 내가 정의한 그의 본질은 질문하는 사람이다. 글과 이야기가 그에 쓰일 뿐이다. 직업으로서 나는 향후 무역인이 될 수도 있겠다. 이상을 꿈꾸든지 현실을 택하든지 하며, 아마 어딘가에 소속될 것이다. 그러나 잠시 잊었던, 내가 정한 본질을 잃지 않으면 된다. 본질을 지키려 늘 노력하며, 그런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그렇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