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었던 많은 말들 중에 먼저 나온 건 동생과 나 사이의 편애였다. 8년을 외동딸로 살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동생이었다. 가족의 관심은 온통 내 동생에게로 갔다. 넌 그동안 사랑받았으니까, 이제는 이 아기를 이뻐해 줄게. 사랑이 둘로 쪼개진 게 아니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했다. 내 느낌이 그랬다.
초등학교에 가는 동생에게 사랑한다고 안아주던 엄마가 돌아서서 너는 공부 안 하고 모하냐는 핀잔을 했다. 성적에 따라 나를 대하는 게 달라졌다. 그게 더 싫었다. 나는 당한 그대로 동생에게 갚아줬다. 등짝을 때리고 뾰족하게 말하고. 그런 내게 엄마는 '너 참 못되 처먹었다 ‘고 했다. 나는 입을 닫은 채 속으로 외쳤다.
’엄마가 더 못되 처먹었어!‘
내가 가진 서러움의 뿌리는 사랑이 거둬졌다는 느낌과 외로움이었다. 비교와 비난,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지지와 좋은 성적이라는 결과로써만 받는 칭찬은 내 존재를 작아지게 했다. 나는 심리학 전공 하고 싶어, 음악을 하고 싶어, 문화기획을 배우고 싶어... 내가 원했던 것은 언제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거절당했고,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순 없다는 말을 들었다.
억울한 건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걸 한 적이 없다는 거였다. 현실적인 이유로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하든지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였다. 나 이거 해보고 싶어라고 하면 돌아오는 말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내가 널 알아, 성향상 너랑 그거는 안 맞아, 그것 봐 안될 줄 알았는데 왜 했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어... 어릴 때 들은 말의 힘은 아주 셌다. 문신처럼 무의식에 새겨져 무시 못할 힘을 발휘했다. 내가 어떤 다른 선택을 해보고 싶을 때마다 이게 내 최선이야, 다른 선택지는 없어 포기하는 게 더 익숙했다.
엄마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그래서 너 결혼하기 전에 미안하다 하지 않았냐고. 그때 얼마나 용기를 낸 건데,라고 했다. 두루뭉술한 사과는 구체적인 상처들에 효력이 없었다. 엄마의 사과와 나의 용서에는 낙차가 있었다. 그것도 몇 년씩이나.
엄마는 금세 속상한 표정이 되었고,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엄마가 더 못되 처먹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하자, 엄마는 침울한 목소리로 그때 그냥 말하지 그랬어, 할 뿐이었다. 엄마한테 자식이 못되 처먹었다고 말하도록 허락할 수 있나? 나는 엄마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말을 사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속상한 엄마가 에둘러 표현하는 사과.
나는 중년을 향해가는 어른이다. 이젠 내가 나 스스로를 키워야 하지 않나. 여전히 내면에 살아있는 부정적 목소리에서 벗어나는 건 나의 다른 인생과제로 삼았다. 언제까지 엄마 탓만 할 순 없으니까. 원망 대신 감사를 택하고, 두려움을 깨고 도전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남 탓이 하고 싶을 때. 특히 모든 걸 엄마 탓으로 돌리고 싶을 때 나는 머리를 흔들고 속으로 되뇐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 나는 더 이상 부모의 영향 아래 있는 어린 아이가 아니야. 나는 할 수 있어. 못해도 괜찮아. 너무 잘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어. 지금으로도 충분해.
엄마는 요즘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전화를 끊을 때마다 ‘우리 딸 사랑해'라고 한다. 딸에게는 그렇게 쉬운 사랑해가 엄마에게는 잘 나오지 않는다. 마음을 열고 나도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생각하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엄마는 엄마 나름의 자식 사랑을 실천하고 있고, 나에게 멋있는 엄마가 되려고 애쓴다.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