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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Dec 17. 2020

새벽을 걷는 사람들

아침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대학생 때, 오전 수업이 있는 날이면 출근 지옥철을 겪고 싶지 않아 일부러 더 일찍 학교를 가곤 했다. 회사를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6시. 나에겐 새벽의 시간이었다.


새벽은 미지의 시간이다. 잠에 취해 외부와 단절이 되는 시간. 그리고 외부의 시간 또한 잠에 취해있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다가 곧 관심이 떨어지는 시간.


그 미지의 시간에 내가 발을 디디는 날이면, 항상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이 시간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깨어있다고? 이 사람들은 다 어디를 가는 거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한 공기 속에서 저마다 치열함을 숨기며 조용히 걷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고, 동시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위안도 받았다.


그 새벽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지금은 의도하지 않으면 일어날 일 없는 시간, 6시. 그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 일부러 나는 알람을 맞췄다. 그리고 눈을 떴다.



(솔직히 말하자면) 위 프롤로그를 작성한 것도 벌써 일주일 전이다. 알람 소리를 못 듣기도 했고, 의지가 약해져 다시 자버리기도 했고. 그러다 오늘은 늘 그랬듯 울리는 알람을 꺼버리려다, 마음을 굳게 먹고 꾸역꾸역 일어나 드디어 집을 나섰다.


출발한 시간


요즘은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일어나서 그런지, 몇 시에 해가 뜨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6시 30분에 집을 나서는데 깜깜해서 놀랐다. 아, 맞다. 벌써 겨울이지.


역시 이 시간에도 걷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내가 걷는 집 앞 산책로를 짧게 소개하자면, 나의 빠른 걸음으로 목표지점까지 왕복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다. 산책로 옆으로 수로가 길에 이어져있어 정말 예쁜데, 이곳을 아침에 걷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오늘따라 부는 칼바람에 패딩 모자를 꾹 눌러쓰고 걷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슥한 밤이 채 끝나지 않은 이 시간에 약간의 오싹함을 앉고 곳곳에 있는 가로등 불빛에 의존해 걸었다. 그렇게 목표지점에 다다르고 코너를 도는데, 와아. 이미 해가 뜨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늘. 어스름이 제법 사라지고 동살이 잡혀 오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늦잠을 자면서 놓친 것 중 하나였다. 바로 떠오르는 해의 하늘을 보는 것.


앞으로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책해야지'와 같은 다짐은 장담 못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자주 해보고 싶었다. 아침노을 하나 때문이지만 충분히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새벽을 걸으며 깨달은 점

내가 가고 있는 방향도 중요하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이 해가 뜨고 있는 동쪽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쪽에서 출발했다면 보지 못했을 해를, 서쪽에서 출발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큰 맘먹고 나온 아침 산책이 더 뿌듯해졌다고 해야 할까. 어둠 속을 뚫고 한줄기 빛을 발견한 극적인 효과가 있는 것도 같고. 어쨌든 인생에서도 방향이 정말 중요하겠구나.



너무 오랜만에 걸어서, 그것도 이른 아침시간에, 그것도 평소 안 신던 운동화를 신고. 왼쪽 발 뒤꿈치가 분명 까진 것 같았다. 아, 갈 길은 아직 먼데.


때마침 추워서 꽁꽁 얼어버린 길을 마주했다. 그렇게 뒤뚱뒤뚱하며 천천히 걸었다. 뒤꿈치 아픈 게 조금 나아졌다. 여기서 인생을 알았노라고 말하면 거창하지만, 이게 인생 아닐까. 지쳐 멈추고 싶은 순간에, 굳이 멈추지 않더라도, 그리고 멈췄다고 느껴진다 해도, 어떻게든 나아갈 방법이 생기고, 또 천천히여도 나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아침 산책으로 오늘 나는 하루를 좀 더 빨리 시작할 수 있었고, 그만큼 나의 하루가 길어졌다. 덕분에 지금 이렇게 상쾌한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지 않는가. 기분이 좋다 못해 신이 난다. 괜스레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다.


새벽을 다시 느껴보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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