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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Dec 15. 2020

‘첫눈’이 한 단어인 이유

모든 처음은 특별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눈’이 내렸다.


어렸을 땐 눈이 오면 마냥 신나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어느새 나에게 눈은 골칫거리가 되어 있었다. 눈 오는 날이면 출퇴근 길은 평소보다 더 막히고, 길거리도 질퍽해져서 신발은 다 망가지니까. 신경 쓸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왜 이렇게 ‘좋아하지 않을 이유’를 따지는 지 모르겠다. 좀 더 현실적이 됐다는 평범한 말로 변호해 보지만, 좋아할 이유를 따지면 삶도 더 예뻐 보일 텐데 굳이.


동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말은 참 서글프지만, 동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보이는 그대로에 집중했다. 눈이 더 예뻐 보였다.



내리는 눈을 직접 맞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어, 장 보러 간다는 핑계를 찾아 집을 나왔다. 집 앞 슈퍼를 향해 걸어가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누군가 귀엽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눈사람 가족이었다. 분명 칼바람이 불어오는데 내 마음은 따뜻해졌다.


눈사람 가족의 머리와 목이 허전해 보여서, 그림으로지만 모자와 목도리를 해줬다. 모자와 목도리를 그려 넣어주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실실 나왔다. 잠깐 동심의 세계로 갔다 온 걸까?


처음은 언제나 특별하다.



’은 명사를 수식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관형사다. 그래서 보통은 첫 뒤를 띄어 쓴다. 첫V만남, 첫V시험, 첫V장, 첫V월급, 첫V느낌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첫눈은? 하나의 단어다. 그 이유는 ‘첫눈’ 또한 원래는 띄어 써야 하지만 순수와 설렘으로 다가오는 존재를 소홀히 대접할 수 없어,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는 단어들이 더 있다.


첫사랑

첫날

첫겨울

첫발자국

첫출발

첫인상

첫마디


누구라도 위 단어들을 보게 된다면, 그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밀려오는 설렘으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보다 특별해진다.


’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일까? 대상이 무엇이든 모든 ‘첫’은 특별하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형용사는 많다. ‘시작하는, 처음의, 첫 번째의, 출발하는, 새로운’ 등등. 하지만 ‘첫’만큼의 떨리는 감정을 주는 단어가 없는 걸 보면, 저마다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느낌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어쩜 그렇게 다 다른 감정을 주지?


첫눈을 맞으며 문득 이런 다짐을 해보았다. 대상이 무엇인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첫출발을 특별하게 여길 것. 그리고 그것이 주는 설렘을 좀 더 즐겨야겠다. 두려워하지 않고, 긴장하지 않고.


그리고 이렇게 용기를 내어 디딘 첫발을 잊지 말자.




(‘첫’과 관련된 내용은 어제 읽은 뉴스 기사를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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