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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Dec 07. 2020

눈치 보며 표현해야 하는 시대

의도적인 곡해 속 고통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 다양한 매체가 생겨난 덕분에 온라인 상에서 나를 표현하는 수단도 다양해졌다.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사는 시대라고는 하나, 실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표현의 자유는 억압 아닌 억압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눈치 보며 표현해야 하는 시대. 더 정확히 말하면, 눈치 보며 표현하게 되는 시대가 맞겠다.


나 또한, (언젠가는 지인들에게 이건 내 브런치에요ㅡ라고 밝히겠지만) 나의 정체성을 밝히지 않은 채 글을 쓰는 게 더 편하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말과 생각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사실 눈치 보기도 싫기 때문이다.



이번 쇼미더머니 시즌9를 보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가사를 발견했다.

뿌리 (feat. JUSTHIS) (Prod. GroovyRoom) - 쿤디판다 / 저스디스 랩 part 中

명반 내래서 냈던 정규 whoa
랩부터 잘하래서 보여주고
증명했더니 이젠 벌고 오래 돈부터 whoa
그래서 나왔다 쇼미에
...
내 신격화 눈꼴 시린데
내가 기만을 했니? 그것도 다 내 실력인데
저열한 이곳 처음엔 랩만 잘하라 더니
이젠 귀에도 눈깔들이 달려있대
잘 생겨야 들린대 꾸미래서 꾸몄더니
힙합 아니고 아이돌이냬 whoa
근데 나보고 없다고 논리?
그래서 fact 들고 오면 왜 이렇게 부정적이냬
희망적인 말함 척이래 거짓이래
물리고 물리는 말 꼬리의 꼬리의 꼴이 우웩
토가 쏠리네
말 한 번 잘못하면 다음 날 사형대에 목이 있네


쇼미더머니를 통해 알게 된 래퍼 저스디스. 난 이번에 처음 본 래펀데 심사위원이라고? 다들 대단하다고 하길래, 뭐가 다르길래 대단하다고 하는 거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번 무대를 보고 팬이 됐다. 랩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니, 경외심까지 들었다. 가사가 쏙쏙 잘 들리는 건 둘째 치고,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쿡쿡 찔렀다. 본인의 악플러들에게 남기는 (진정성 가득한) 메시지여서 그런지 마음에 더 와 닿았다.


이러니 저러니 뭘 해도 따라오는 말들. 연예인이건 비연예인이건 (연예인은 공인의 입장에서 더 많은 말들이 있겠지만) 사람이 있는 곳엔 그곳이 어디든 이런저런 말들로 가득하고, 가득하다 못해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말들은 지치지도 않을까?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을까.


의문을 품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자그마한 의문에서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그러다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모든 시작은 의문이다. 의심을 하는 것도 나쁜 게 아니다. 의심을 함으로써 긴가민가 했던 마음을 확실히 다잡을 수 있다. 하지만 곡해는 다르다.


곡해(曲解): 사실을 옳지 아니하게 해석함. 남의 말이나 행동을 본뜻과는 달리 좋지 아니하게 이해함.


의문이 생겨서 혹은 의심이 들어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의견을 말하고 있는 거다ㅡ라고 주장하곤 한다. 그렇게 악플러들은 본인들의 '합리적인' 의견을 '합리화'시키곤 한다. 하지만 의견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의견 제시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곡해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진실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이.


이런 (의도적인) 곡해는 비단 악플러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흔하디 흔한 일이다. 남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상관없이 내 할 말 내가 하면 되지ㅡ싶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그리고 나는 더더욱 사회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동물인지라 쉽지 않다. 혹여나 나의 진심을 오해하지 않을까, 혹여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혹여 나의 글을 하찮게 여기지 않을까 등등. 주변 시선에 신경을 쓴다. 쓰고 싶지 않아 쓰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나 조차도 지친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만 해도 그렇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조회수와 공감수를 신경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난 아직도 멀었구나.


하지만 브런치 여기에서만큼은 모든 시선에서, 모든 평가에서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노력 중이다. 맘껏 표현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표현하기. 그러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떠오르면 그 꼬리를 잘라버리기. 그리고 그냥 그렇게 계속 일단 쓰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된 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나, 우리 스스로 자유를 억압하고 있고 동시에 억압받고 있다.


나부터 반문해보아야 한다. 나는 한 번도 그 누군가의 SNS 사진과 글들만 보고, 그들을 평가한 적이 없는가. 나는 한 번도 그 누군가의 진심을 궁금해하지도 않으면서, 그 진심을 무시한 적이 없는가. 나는 한 번도 누군가의 표현에 이유 없는 반기를 든 적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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