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과 자유 그 사이 어딘가쯤
무언가를 시작하는 그 누군가에게는 흔하디 흔한 to-do list.
시작을 하려고 하면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세우다 보면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지켜나가다 보면 종점에 다다를 수 있을 테니.
그래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계획은 뗄레야 뗄 수 없다. 그들에게 '매일매일'의 계획을 세우는 일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예를 들면,
하루에 영어단어 10개씩 외우기.
하루에 글 하나씩 쓰기.
하루에 물 2L씩 마시기.
하루에 1시간씩 산책하기.
하루에 이거 하기, 하루에 저거 하기.
나 스스로 규칙을 세워 매일매일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옆사람이 말한다.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 그건 강박이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스트레스 주고, 안 힘들어?"
순간, 맞는 말 같았다. 그리고 어느 정돈 맞는 말이다. 분명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니까.
'고통 없는 창작이 어딨겠냐, 습관 없는 삶이 얼마나 한심한지 알긴 아냐'라고 혼잣말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분을 삭여보지만, 위로가 되기는커녕 기분이 나빠졌다.
창조가 규칙이 되면 고통스럽잖아요.
/ 내가 좋아하는 배우 윤시윤의 인터뷰 中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배우 윤시윤에게 기자가 정기적으로 연재해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말이다. 창조가 규칙이 되면 고통스럽잖아요. 맞는 말이다, 분명 고통스럽다.
강박과 자유의 사이
의무와 자의의 사이
강제와 자진의 사이
하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생겨나는 꾸준함.
누군가는 당근으로, 또 어떤 누군가는 채찍으로 자극받고 성장할 수 있다. 저마다 갖고 있는 자극제는 다르다.
남들이 보기엔 강박적일 진 몰라도, 중요한 건 이게 포인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나와의 약속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어떤 결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의 것들을 안 할 순 없다. 안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지금은 나 혼자와의 약속일 뿐일 수 있지만, 이 하루하루 하나하나가 모여 나의 꾸준함이 빛을 발해 한 무리의 사람들과의 약속이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머지않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이 오히려 더 강제적으로 느껴지고,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나 혼자와의 약속 또한 지금만 놓고 볼 때 역시, 강제적으로 느껴지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강박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그 강박 속에서 스트레스받아도 좋다.
나는 하루하루 꾸준히, 조금씩 해나갈 것이다. 그 소소한 성취감이 하나하나씩 쌓인다면, 그걸로 족하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오늘의 계획을 못 지켰을 때, 좌절하지 않기.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오늘 하루 못했다고 해서 '꾸준히'의 정의가 와르르 깨지는 건 아니다. 오늘 안 한 일은 은근슬쩍 눈 감아주자. 그리고 내일 다시 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