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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Dec 05. 2020

예상'치 못한' 결과가 주는 결과

그리고 그로부터 8년 후 오늘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길을 가던 내가 잘못이냐 거기 있던 돌이 잘못이냐. 넘어진 사실을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인생길을 가다가 넘어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이 길을 가면서 같은 방식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한다면 분명히 잘못은 당신에게 있다.

하악하악, 이외수 저.  


공부가 되었든 혹은 일이 되었든, 우리가 하는 모든 일련의 행위의 '결과'는 우리가 처음 원했던. 예상했던 결과로 '항상'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게 나와 인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 거고, 더 위로를 하자면 이번 기회가 나와 인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원했던 결과를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슬픔과 좌절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며 성장을 위한 잠시의 과정이다. 굳이 이러한 감정을 빨리 털어버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어찌 보면 '소모적'일 수 있는 감정에 지나친 시간을 소모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슬프면 슬픈 대로 충분히 슬픔을 느끼고, 대신 이 슬픔을 밟고 일어나 한 발짝 더 나아간 '뭔가'를 계획해야겠다.


여러 상황을 겪으며 내가 갖게 된 '믿음'은,

내가 원했던 결과든 원하지 않았던 결과든, 모든 결과들은 내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 것이라는 믿음이다.


/ 지금으로부터 8년 전, 2012년에 쓴 글



내가 정말 간절히 원했던 목표가 있었다. 몇 년 동안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쓴 글이었다. 내 인생에서 마음이 무척이나 힘들고 가장 아팠던, 2012년.


'우리는 결과 지상주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자, 고 해도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아무리 작을지라도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그 실체가 존재해야 한다, 눈에 보이게. 그래야 인정을 받는다. 아니지, 더 정확히 말하면 인정까진 아니더라도 '얘가 진짜 하고 있긴 하구나'의 신뢰 정도. 그 신뢰가 뭐라고, 결과물에 그렇게 목숨을 걸었을까. 물론 지금도 그 속박에서 완벽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8년 전 글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때의 글이 없었다면 잊혔을 그 당시의 감정. 잊히진 않는다고 해도 막연한 안갯속 보일랑 말랑 하는 희미한 실체로서 존재하다 사라질뻔한 그 당시 감정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의 8년 전 글 덕분에.


내가 원했던 결과든 원하지 않았던 결과든, 모든 결과들은 내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 거야.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래ㅡ라는 마음으로 갖게 된 막연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믿을 거야'라고 당당히 말했지만, 솔직히 마음속엔 확신이 없었다. 보여주기 식 믿음? 그랬다.


하지만 8년 후 오늘이 돼서야 나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막연했던, 그래서 불신했던 믿음이 믿음으로만 끝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땐 그게 내 평생의 유일한 목표이자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년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고, (마지막 실패 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모든 걸 쏟아냈다.'라는 마음이 들어 후회도 없었다.) 노력에 마침표를 찍었고, 다른 길을 찾으러 떠났다.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길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원했던 유일한 목표이자 꿈을 이뤘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건, 내가 이룬 꿈은 명사도 아니고 직업도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은 명사이자 직업이었다.


꿈을 명사화하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한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지만, 꿈을 형용사화, 동사화 해보자. 꿈의 범위가 무한하게 늘어나고 동시에 생각보다 쉽게 꿈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여러 가지 해보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산이 될 수 있다.


방송인 타일러가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요즘의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나를 어떤 '명사'로 정의 내릴 수 없다. 그래서일까. 숨어있던 불안감이 또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뭔가를 하면서도 즐기는 게 아니라 긴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커지는 불안을 붙잡고 다시금 마음을 잡아 본다.


생각해보면 굳이 명사로 정의 내릴 필요가 있나? 없다.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 이거 한다고 뭐 달라질까? 싶어서 머뭇거리던 내게 용기를 준 타일러의 한마디. 그래, 하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해보자. 그게 진짜 나의 자산이 될 거야. 직접 경험했잖아, 8년 동안.


여전히 나는 믿음과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그렇게 소소하고 조그마한 나의 시작들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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