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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Dec 08. 2020

나를 설명했더니, 생기는 후폭풍

나를 한 단어로 '그만' 정의하기

나 스스로 나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주변을 의식해 진짜 나를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나의 꽃 테스트, 나의  전생 집 테스트나 MBTI를 하면서 아, 내가 이런 애였구나ㅡ를 알게 되며 내심 안도하곤 한다. 사실 어떤 (다른) 수단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편이 더 쉽다.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가끔은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문득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럼 나는 보통 이런 깨달음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편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런 사람이었더라고.

생각해보니,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더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나에 대해 다시 정리해볼 수 있었다. 그러다 때로는 나도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해 상대방이 말해줄 때도 있었다. 그렇게 타인을 통해,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편이 더 편했다.



나를 설명했더니, 발생하는 일들


나를 보여주는 게, 나를 알려주는 게 내 딴에는 우리의 가까운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나는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


말을 꺼내는 순간, 정의가 내려지고, 그렇게 이미지가 굳어지고, 결국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왔다.


분명 상대와 나는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데, 나만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을 꺼냈다는 이유로.


나는 나에 대해 이야기해줬을 뿐인데, 그 순간부터 그냥 그런 애가 돼버렸다. 상대방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렇게 그런 애로 굳어져 고착된 채, 그런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내 강점은 아니었다, 약점이었다.


'너도 똑같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알려준다곤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 말은 되도록이면 하지 말아야 하기에.


말 한마디의 힘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내가 잠시 자만했었나 보다. 말을 하고 나서 돌아올 수 있는 후폭풍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후폭풍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더 맞겠다.)


말하기가 무서워졌다.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게 무서워졌다. 사실 그 누구도 내게 나에 대해 알려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


아무리 내가 그런 사람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고, 365일 내내 마냥 그런 사람으로 지내는 건 아닌데. '그런 사람' 하면 '내'가 떠오르게 됐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내가 자초했다. 내가 나에 대한 고정관념을 그들에게 심어줬다고도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너무 나를 잘 알려고 한 나머지, 나부터 나를 정해진 틀에 집어넣은 건 아닌가. '나를 왜 그런 애로 봐요?'라고 서운해하며 남을 비난하기 전에, '나를 그런 애로 봐주세요!'라고 나 먼저 요구했던 건 아닌 지.


나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너무 필사적으로 알려하지 말 것. 자연스럽게 찬찬히 알아갈 것. 그 시간을 충분히 줄 것.


나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너무 정확하게 정의 내리려 하지 말 것. 한 단어로, 혹은 한 구절로 표현 못하는 내가 분명 있기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굳이, 남들에게, 나를 설명하려 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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