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비가 내리고 날씨가 우중충했다.
어지간히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우산을 잘 쓰지 않는 현지인들이 처음에야 낯설었지만 지금은
나도 우산을 펼치는 일이 거의 없다.
먼저 우산을 쓰고 가야 할 만큼 먼 거리를 도보로 이동하지 않게 되었고
겨울 외투에는 거의 대부분 모자가 달려있어서 그냥 간편하게 쓱 뒤집어쓰고 만다.
한국에서의 추위와 폴란드의 추위를 비교하자면 단연컨대 한국이 훨씬 더 춥다.
올 겨울 유달리 따뜻했다던 유럽과 한파가 몰아쳐서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졌다는 한국의 뉴스를 들어봐도 알법하다.
다만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의 난방이 바닥 난방(underfloor heating)이 아니라 라디에이터를 쓰고 있고 그나마도 중앙난방이라 날씨가 그리 춥지 않으면 라디에이터는 작동을 안 한다.
쌀쌀하다는 표현보단 은근~히 계속 싸늘해서 짜증 나게 하는 추위랄까..
이곳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하러 갔던 한식당에서 사장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누가봐도 이제 막 폴란드에 온 듯한 새내기 향기를 풍기는 우리 가족들을 보고 사장님은 이사온지 얼마나 되었는지 물으셨다 그리고 아이를 보며 반가워하고 귀여워하셨다.
이제 온지 일주일쯤 되었다고 하자 사장님은 하필이면 날씨가 안좋아질때 왔냐며 아쉬워 하셨다.
날씨가 어떻길래 이곳에 사는 한국사람들은 날씨 얘기를 많이 하는걸까 생각했었는데 살아보니 대충은 알것 같다.
비가 오면 몇일동안 어두컴컴하니 해가 안뜨고 해가 안뜨면 기분이 가라앉고 몸도 무거워진다.
날이 어둡고 추우니 바깥 활동에 제약이 많아 집 안에서만 지내게되고 내가 유럽에 있는건지 '집'에 있는건지 모르겠는 상황이 된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는다.
햇빛 따뜻하게 내리쬐는 공원에 가서 멍때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렇게 한참을 바쁘게 움직이다가 돌아본 창밖엔 무지개가 예쁘게 떠있었다.
"무.. 무지개다?!"
깜짝 놀라 카메라를 켜고 셔터를 네댓 번 누르고 나니 금세 무지개가 사라져 버렸다.
날씨 때문에.. 혹은 이게 아니라서.. 나는 저게 없어서..라고 그만 투덜대고 예쁜 무지개나 보고 지금을 즐기며 살라고 얘기하듯이 그렇게 무지개가 떴었다.
잠깐이었지만 깜짝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쁘고 설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이미 지나온 것들, 사라져 버린 실체 없는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지금을 살고
다가올 것들을 기대하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