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본 그의 영화들 중 가장 좋았다.
_ 사실 나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이후 그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 평소 방에서 킬킬거리고 싶을 때, 종종 그의 영화를 돌려보곤 했는데, 어떤 순간부터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새로운 영화가 나왔을 때도 그딴 사람의 영화를 볼 수 없다고, 보고 싶은 마음을 참곤 했었다.
_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는 홍상수가 없었다. 그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그가 없었다. 구린 패닝과 클로즈업, 기똥찬 대사, 기가 막힌 연기들은 언제나 그의 영화에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그 모든 것들은 홍상수를 가리키는 것들이었지, 한순간도 연기 자체, 그 배우 자체, 그 공간 자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영화는 달랐다. 홍상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있었지만, 저 구석에서 머리를 다리와 가슴팍에 쳐 박고, 쭈구려 앉아 있었다.
_ 영희는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자신이 믿는 것이 이런 것인데 어쩌란 말이냐고 울부짖으며, 못되었지만 솔직하게 굴었다. 그녀는 대단했다. 영화가 끝난 후 그녀에게 제일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감독이 준 책을 언젠가 읽게 된다면, 과연 감독이 횟집에서 읽었던, 그 대목을 어떻게 넘길 지를 묻고 싶었다. 과연 그녀는 그냥 엉엉 울면서 책을 덮었을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꾸역꾸역 눈물을 참으며, 그 책을 다 읽어낼 것이고, 별 것 아니네라고 내뱉으며, 스스로를 위로할 것이다.
_ 감독은 타인을 읽어가며 자신을 알게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자신이 사랑하게 된 여자는 자신이 읽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몰라 두려워 하고 갈피를 못 찾는 듯 보였다.
_ '곱게 죽어야지’라는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한 그녀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곱게 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 이제 정말 죽는 건가?”를 말할 수 있는 임종 직전 순간에 나는 어떤 죽음이 곱게 죽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모르면 닥치라고 한 영희는 그 방법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그녀는 죽고 없는 것일까? 그녀의 말처럼 정말 솔직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 좋은 것이고, 내가 곱게 죽기 위해서 필요한 것일까?
_ 결국, 홍상수는 자신이 <북촌 방향>처럼, <우리 선희>처럼, <해변의 여인>처럼, 그렇게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그의 세계가 아니라 그가 만든 세계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세계 속 어디에도 그는 없었다. 이전 그의 영화 세계를 채우던 말들이, 사실은 그의 말이 아니고, 그의 되고 싶은 것의 모양이었다는 것을 오늘,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북촌 방향>에서 ‘우연’이 신기하다고 말하며, 너무 좋다고 했던 감독은 홍상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_ 여전히 그들이 추한 사람들이라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함없다. 서영 언니는 내가 분노에 가득찰 것이라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나는 영화관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일어난 사람이었다.
_ 그는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웠을까? 자신이 남들을 괴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그렇게 괴롭게 한 것일까? 먼 훗날에 그들이 어떤 모습일지 나는 모르지만, 그 때에 그들이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