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양>을 보고
내가 가진 믿음 - 그것이 내가 믿는 종교의 신 존재에 대한 물음이든지, 나를 지탱하는 신념이든지, 누군가를 향한 나의 가냘픈 사랑의 마음이든지 -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영화 <밀양>은 사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믿음에 대한 의심을 긁어낸다. 그리고 믿음의 영역이 결국 이성적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감정적 동요에 의한 것임을 이야기한다. 스스로의 힘듦을 극복하고자 믿어왔던 어떤 것에 대해 부정을 또는 배신을 당하는 순간 우리가 마주하게 될 상처를 직시하게 된다.
보이는 것도 믿기 힘든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는 이야기는 청자일 때뿐 아니라, 발화자의 입장일 때도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말에 넘어갈 때에도, 또는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것에 성공할 때에도 그것은 절대 말 몇 마디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겉으로 말하지 않지만, 분명 알고 있다.
슬픔을 삼키기만 했던 사람이 마음껏 소리 내 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믿음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믿음에 대한 반항은 그녀의 처절함을 그 무엇보다 잘 보여준다. 자신을 교회로 이끈 약사의 남편인 권집사를 유혹하며 보고 있냐고 속삭이는 장면에서, 자신의 동맥을 칼로 그어내는 장면에서도, 온통 기도의 외침이 가득한 공간에 ‘거짓말이야’라는 가사가 쩌렁쩌렁 울리게 하는 장면에서도. 그녀가 믿음은 없고, 신도 없다고 발악하는 장면에서도 잔인하게도 신은 대답 한 번 해주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잘린 머리카락만이 바닥에 남았다. 아마 그녀는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이, 영원히 의심하고 또다시 ‘없음’을 열렬히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사람은 매 순간 합리화와 정신승리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럴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과 끊임없이 의심을 가지는 것은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김 약사는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신애에게 우리에게는 햇살 한 줄기에도 주님의 뜻이 서려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영원히 한 줄기 햇볕은 존재할까? 어쩌면 변함없이 우리를 내리쬐는 햇빛 같은 것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신은 모두의 편이어서, 그 누구의 편도 아니기에, 그 공평무사함이 참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