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하여
‘무섭다’
요즘 이 단어의 힘을 가장 크게 느낀다. ‘무섭다’라는 감정은 일상생활에 잘 찾아오기 어려운 형용사라고 생각했다. 내가 공포영화를 보지 않으면 되지, 스릴러를 보지 않으면 되지, 내가 어두운 곳에 가지 않으면 되지. 피하면 다 해결되고, 마주하지 않을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렵고 극복하기 힘든 일이나 상황을 마주쳤을 때는 과감히 깨지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과감히 깨지고 부서지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 감정이 물론 맞는 말이지만, - 여유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무언가를 결정 내려야 하고, 그것을 반드시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대안이란 없는 것이다. Plan B로 가는 순간 나는 세웠던 계획이 무너졌음을 인지하고, 재빠르게 방향을 바꾸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처음에 내가 세운 목표를 얻기 위해서는 대안을 없다는 생각이 지금의 나를 괴롭힌다. 괴롭힌다는 표현이 맞을까. 현명하지 못하게, 꿈만 꾸다 이제 내가 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나는 인정해야 한다. 살이 베는 아픔이고, 뼈가 깎이는 고통이지만 인정해야 한다. 나는 열심히 살지 않았고, 중간에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끝까지 가보지 않고, 지레짐작해서 포기했다. 그래서 그 대가들을 지금 치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최선을 다하지 않고, 마치 그러했던 양, 나를 최선을 다해 포장하고자 했다.
내가 가진 땅 안에 아무것도 없음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쌓을지, 어떻게 쌓을지 고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생기면, 그것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 그리고 직접 쌓아보고, 실패해봐야 한다.
더 이상 ‘척’은 그만하자. 시간은 가고, 나는 똑똑하지 못한, 아니 멍청한 사람이다.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영리해지기 위해 정말로 노력하자.
앞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최근에 존재에 대한 불안으로 느낀 무서움이 아니라, 무서움을 느낄 사이 없이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한 채 없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없어지지 말고, 굳건히 버티고 살아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