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짜리 일기

by inihiai


- 한 사람과 3년이었다. 시작이 어려웠던 관계였고, 처음에는 짧은 만남이 그리고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제대로 시작을 할 수 있었던 복잡한 관계였다.


- 그 사람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렵게 시작한 것이고, 힘들게 시작한 만큼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특별하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새벽 네시까지 잠들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며 전화를 기다린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그 사람이 힘들어할 때 꼭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었다.


- 시작하는 과정도 사랑을 나눈 과정도 남들과 다르고 특별했는데, 끝은 뭐 이리도 쉽고 빠른지 나는 요즘 내가 리플리 증후군인지 의심될 정도다. 말 몇 마디에 우리가 쌓아온 많은 것들이 무너졌고, 온전한 내 사람이었던 존재가 몇 년 동안 연락 안 한 친구보다 못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내가 이별을 고했기에, 그리고 이 관계를 끝낸다는 것이 얼마나 나에게 큰 일인지를 잘 알았기에 많은 숙고 끝에 나는 이별을 말했다. 고민하는 순간에도 어려웠고, 말하는 순간에는 입에 천만 톤짜리 추가 달린 것 같았다.


- 시간표가 맞지 않아 얼굴을 보기 어려웠던 학기도 있었고, 각자 친구들을 만나느라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던 날들도 많다. 주말이면 일하러 가야 해서, 과제해야 해서 보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 홍대나 강남 나가는 것도 감사해하며 학교 주변을 벗어났다고 좋아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냥 매일 핸드폰 하는 것처럼 오빠는 내 일상이었다.


- 내 일상에서 원래 없던 사람처럼 순식간에 모조리 사라졌다. 시험을 못 봤다고 조잘조잘, 뭐가 속상하다고 푸념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져서 그 감정을 오로지 내가 느끼는 게 너무 이상하다. 어떻게 이렇게 안 보일 수 있지? 죽은 건 아닐까?


- 며칠 전 나의 생일에 남자 친구가 아닌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100일 단위, 각종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던 우리여서 생일과 1년 단위의 기념일은 특별했는데’라는 생각을 하니 더 그 날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 주변 사람들에게 오빠와 헤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듣는 사람마다 ‘네가?’라는 이야기를 하며 놀라는 모습을 보니 우리 관계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졌는지, 그리고 내 옆에 그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일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 순간을 마주하는 때가 가장 힘들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또 아닌 거 같다.


- 제일 병신 같은 건 이런 생각을 내가 하고 있다는 거다. 지금 상황에서 나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한 것이 헤어지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이 든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 빨리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기도 하다. 정말 누가 내 일상을 도려낸 것 같아서 마치 오빠가 있었던 과거가 거짓말 같아서 스스로 정신병자처럼 오빠랑 내가 애인이었던 게 사실일까를 의심하는 순간이 그만되었으면 해서 그냥 누군가를 빨리 좋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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