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수집품들
대지는 자신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에 대한 기억을 죄다 움켜쥐려 하는 특성을 가졌다. 반면 그 위를 두른 하늘은 무엇에 연연함이 없다. 모두가 저들끼리 모여들었다 흩어지고 사라진다. 별들도 구름도 그리고 새들도 마찬가지로. 어떤 생물들은 아마도 하늘을 보면서 숨 쉬는 법을 터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쪽 바닷가 마을인 애월읍 하귀리. 전깃줄이 걸리지 않은 바닷가 땅을 찾느라 3년을 보냈다는 슬로보트의 호스트. 그가 쓴 글을 보고 이유를 짐작해 볼 뿐, 정확히 알지 못한다. 때론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없는 행위들이 존재하고, 그 사이를 넘나들 때 이해의 가능성은 유지된다.
그는 사진작가로 수집 품목 중에는 창문이 있었고 직접 만든 창문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바다가 가까워지자 개천인 구릉내가 급히 내달린다. 바다 향기에 취한 걸까? 민물 게 몇 마리가 모래 밖으로 빼꼼히 몸을 내밀곤 부동자세다. 건물 출입구 벽에 조그만 간판과 함께 매달린 부식된 미놀타 수동카메라.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호기심이 발을 재촉한다.
문 앞 낮은 테이블 위에는 사진엽서가 있다. 그가 찍은 고양이의 느긋함, 매일 다른 모습의 바다, 무성한 초록 잎사귀들. 그 사진들 위는 물이 고인 조그만 천창에서 빛 그물이 내려앉아 일렁인다. 마치 바다 수면 아래를 걷는 듯, 천천히 조용하고 느긋하게 둘러본다. 1층 안쪽으로 커피 로스터기만 보이고 커피 향이 가득하고 벽에 걸린 그의 사진에는 응시의 시간들이 녹아있다.
중앙의 계단은 2층을 양쪽으로 나누며 전체를 조망하며 오르게 되어있었다. 마치 배의 아래층 객실에서 뱃머리에 오를 때처럼. 오른편에 근사한 그 창문이 나타났다. 검붉은 돌덩이들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파도가 있었다. 어느 날은 달래듯 잔잔하고 부드럽다가 또 다른 날은 격하게 몰아치겠지. 갈매기 두 마리가 건물 가까이서 날개깃을 말린다.
호스트는 사진을 찍을 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시도하기를 권한다.
‘달콤한 캐러멜마키아토를 마시고 그 느낌을 표현할 것,
지저귀는 새소리와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의 조화로움을 감상할 것, 유채꽃밭 한가운데에서 눈을 감고 그 향에 젖어볼 것,
매끄러운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고 그 부드러움을 느낄 것.
향기를 맡고, 소리에 귀 기울이고, 촉각을 세우고, 맛을 음미하라. 그리고 사진을 찍어라’*
밤바다의 비경을 혼자 보기 아까워 늦은 저녁까지 문을 여는 호스트. 그는 하루의 덤불 속에서 자신이 발견한 것 중에서 빛나고 아름다운 무엇을 같이 보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 새들처럼 쉬는 법을 알려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저녁의 이곳이 못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