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오래 알고 지내도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의외의 면들을 알게 되고 이내 친근한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 소리소문 책방 역시 그랬거든요. 맨 처음 갔던 날입니다.
오름들 사이로 구불거리는 길을 지나 인가가 거의 뜸해질 무렵 작은 간판을 봤습니다. 자갈이 깔린 넓은 마당에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이 말 수 없는 사람 같아 보였어요. 마당 쪽으로 큰 가지를 늘어뜨린 자귀나무와 이제 막 몸을 부풀리는 열매가 달린 대추나무도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만큼의 땅에 불필요한 장식들을 생략한 모양을 검박한 양식이라고 한다면 제주의 집들은 대부분 그랬습니다. 이 집 또한 경사 지붕에 간소하게 창을 냈습니다.
그 창 안쪽에서는 중년 여성이 밖을 향해 앉아 턱을 괴고 책을 읽고 있습니다. 잔디 위에 깔린 디딤돌을 밟으면서 그녀가 마주한 창을 지나 측면에 출입문으로 들어서니 문패 역할을 하는 글귀가 보입니다.
'작은 마을의 작은 글(小里小文)'
이곳은 바깥 느낌과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빼곡히 들어선 서가와 메모들로 꾸며진 벽들, 무엇보다 모두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어 공기가 팽팽한 느낌. 출입구 쪽에는 낮은 서가 위에 반려동물, 동화책, 제주에 관한 영문판 책, 저널에 관한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가운데는 베스트셀러, 신간 책, 호스트가 애정하는 책, 고전 도서들을 새롭게 보이도록 하는 리커버 에디션 코너. 창가 쪽에는 책방지기들이 녹음해서 들려주는 시 낭송 코너, 연인들이 함께 보면 좋은 추천 책 판매대들이 돋보입니다. 그리고 책방의 강력 추천 코너가 계산대 앞쪽에 한 줄로 서서 손글씨로 된 짤막한 소개서를 이름표처럼 달고 있습니다.
독립서점들이 2014년 이후로 제주에 하나둘 들어선 이래로 10여 년이 흐른 지금, 각각의 서점만이 가진 색깔을 또렷이 드러내는 듯합니다. 거대한 자본의 흐름과 다른 길로 나 있는 언어의 샛강들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더 생생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시끌벅적하게 삶이 요동치며 흐릅니다. 어떤 특별한 매력 때문일까요? 아니면 지극한 사랑은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게 마련이기 때문일까요? 번화가가 아닌 이렇게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책방이 사람들을 이끄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아니면 어떤 기대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상한 이곳에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찾아오는지도요. 이에 응답하듯 호스트는 마치 정원사처럼 고르고 고른 책들을 데려와 싹을 틔웁니다.
‘좋아하는 일이 의심할 바 없는 선한 영향력의 사명’*이기를 바라는 호스트. 그의 희망처럼 서점이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통로이며 독자들을 다양한 각도로 비추어주는 거울의 방이면 좋겠습니다.
어떤 책을 찾는다면 '저쪽 00 코너에 있어요'가 아니라 '이런 책도 도움이 되실 거예요'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단순히 책을 읽고 사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기획을 통해 보고, 읽고, 듣고, 만지고, 쓰고, 생각하면서 책을 통해 확장되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는 호스트. 작가들이 자신의 삶을 어루만지면서 써낸 이야기에 독자에게도 그 길을 같이 걷기를 권합니다. 이런 것이 이 책방의 특별한 환대 방식이겠지요. 과묵하지만 조용하게 친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