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영의 공간에서
올해는 유난히도 겨울의 추위가 늦게 찾아왔다. 1월, 목도리를 동여매고 오래된 찻집으로 서둘러 들어섰다. 2층의 다다미가 깔린 방에 앉아 차를 마시니 몸이 금세 노곤해진다. 주인이 권해준 호지차였는데 구수하고 부드럽다. 정오쯤이었는데도 어둠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루가 삐거덕대고, 찻잔 숟가락 부딪히고,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누런 창호지 문 너머로 나지막이 들린다. 잠깐씩 커다란 대나무 풍경소리도 났는데 손님이 오가는 소리였다.
어떤 소리는 가끔 먼 곳의 이야기를 불러와 화음을 이루기도 한다. 소설 <설국>에서 쇠 주전자 속 물 끓는 소리를 묘사한 부분이다.
"여관 주인이 특별히 꺼내 준 교토산 옛 쇠 주전자에서 부드러운 솔바람 소리가 났다. 꽃이며 새가 은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솔바람 소리는 두 가지가 겹쳐, 가깝고 먼 것을 구별해 낼 수가 있었다. 또한, 멀리서 들리는 솔바람 소리 저편에서는 작은 방울 소리가 아련히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최근에 안 일이지만 오래전 탕관인 쇠 주전자는 차를 끓이면 바닥에 배열된 작은 쇳조각이 달그락거리며 특별한 선율을 냈다고 했다.
이곳은 순아커피다. 2층으로 된 목조식 가옥에 자리한 찻집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했다. 여태껏 무심히 지나친 탓인지 자세히 보니 그렇게 생경할 수가 없다. 이웃한 건물들과 더욱 대조되어 낯선 모습이다. 1층 내부는 오래된 세월을 지나온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살만 남은 장지문, 페인트칠이 벗겨진 나무 기둥들이 검게 변한 위층의 목조 바닥을 촘촘히 지탱하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폭이 좁고 급하게 기울어져 있다. 조심스레 발을 디뎠더니 나무계단이 서로 맞잡은 이음 사이에서 낡은 기침 소리를 냈다. 미세한 흔들림이 발목에서 정강이로, 계단 손잡이를 붙든 손가락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고목으로 덧댄 벽, 아직 옅은 어둠에 잠긴 다실.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온 오후의 햇빛이 조금씩 몸을 뉜다. 이어 미닫이로 된 장지문에 서서히 스며들고 천장의 나무패널이 화산 송이의 빛깔처럼 붉은색을 내뿜기 시작한다. 이내 벽체들이 서로를 반사해 온통 방안이 은은한 주황빛으로 물든다. 바랜 풀빛의 다다미 바닥에 다다른 빛은 점점 더 큰 창을 낸다. 그러나 벽장처럼 생긴 안쪽의 벽은 아직 깊고 짙은 어둠 속에 있으면서 옹기항아리를 오붓하게 품고 있었다.
이 건물은 여기서 오랫동안 버티고 서 있었다. 왼편에 있는 관덕정의 처마가 잘렸다 복원되는 아이러니한 장면, 말발굽의 소리와 행진하는 소리, 요란한 총소리와 화염, 아우성, 울부짖는 사이렌 소리도 들었으리라. 그래서 더 애처롭게 느껴지는 걸까? 목조 건물을 유지하려면 많은 수고가 필요한 일이었고 거기다 시내 중심가에 있어 헐지 말지를 오랫동안 고민했다는 호스트다. 여러 노력으로 다행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미지에서 느낄 수 없는 입체적이고 생생한 물질성은 허술한 우리의 기억을 붙들어 주는 조각들이다. 뒤를 돌아볼 수 있는 과거의 흔적들이 없다면 납작한 시간 속에서, 나는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에 이끌릴 때마다 그것이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