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잡지라는 두 단어 사이에는 활기가 있다. 사람의 손, 잉크 냄새, 동료, 분주함, 발간 소식 같은 보이지 않는 단어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을 불러온다. 1990년대 초에 보았던 제주 시청 부근에 작은 활판 인쇄소에 대한 기억이다. 어둡고 작은 공간을 꽉 채운 기계들 사이에서는 가지런히 배열된 연활자들이 반짝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의 말이나 글보다도 그때가 조금은 단단하고 무거웠다고 느낀다. 그건 아마도 당시 복잡한 수작업 과정을 거쳐 인쇄되었던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예전에는 디자인 관련 일을 할 때여서 주로 디자인 관련 잡지를 보곤 했다. 세련된 이미지와 서체, 글이 종이 위에서 조화롭게 배치된 잡지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잘 정돈된 집을 보는 것처럼 산뜻한 즐거움을 느꼈다. 잡지는 기자와 사진작가, 디자이너, 편집자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세상의 면면을 다양한 관점에서 오랫동안 관찰해 보여준다. 그 에너지들이 좋다. 최근에 서점에서도 잡지의 종류가 많이 줄어서 아쉬웠다. 그만큼 예전처럼 잡지에 대한 선호도 줄어들기 때문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잡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가 있어 그곳으로 갔다. 제주의 오래된 동네인 건입동. 제주항과 가까이 있어서 이른 아침 거리에는 해초향이 짙다. 새벽의 분주함으로 하루를 여는 이곳에 잡지서점이라니. 꽤 잘 어울리는 듯하다.
종이. 잡지. 클럽 세 단어가 만났을 때
여기는 종이잡지클럽이다. 국내외의 다양한 잡지들을 큐레이션 하여 새로운 감각들을 사람들과 공유한다. 여기 호스트는 말한다. ‘하나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함께 읽는다는 행위가 서로에게 주는 안전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일시적 관계에서 생겨나는 마음들이 정처 없이 떠돌 때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 게 마음이 쓰였던 걸까. 그래서 여기에 자신의 배를 정박하기로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벗'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빵을 함께 먹는 사람이라 한다. 나는 온라인에서 이루어졌던 모임들이 끝나 그룹채팅방이 사라질 때마다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이 주는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친근함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사람이 친구라면 가끔이라도 만나 함께 책을 읽는 사람을 벗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잡지라는 매개로 시간을 내어 취향을 탐색하고 관심사를 공유하는 일은 특별했다. 일회성이 아니라, 매달 쌓이는 잡지처럼 관계의 심도도 함께 깊어지는 일이므로. 누가 그랬다. 지금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남아있는 이유가 있어서라고. 최근 LP 레코드만이 가진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듯이 잡지도 인간에게 아직은 필요하다.
주말이 되면 독서클럽들이 열린단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상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사유의 재료들을 펼쳐 놓을 테지.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안마당에 들러 아담한 정원에서 커피를 마셨다. 테이블의 대화들 사이로 흐르는 아침의 포근한 공기가 근사한 오늘이다. 누군가와 만나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새로움을 도모하고 싶은 그 간질거림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