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로이

그림 속을 거닐다

by 이니마


샤르륵 샤르륵. 대나무 잎 소리다.

말의 갈기처럼 생긴 대나무들이 서로 비비대며 선선한 바람에 이른 아침의 습기를 털어내고 있다.

안마당 쪽으로는 검고 육중한 입방체의 건물 몇 채가 거리를 두고 기념비처럼 서 있다.

그중 한 건물 안에서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가 말없이 차를 마시고 있다.

여기인가?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안내판을 보고서야 카페 입구를 찾았다. 동굴처럼 온통 컴컴하다.

음료를 주문하는 동안 맹했던 눈은 점차 적응했다. 그제야 왼쪽으로 폭이 좁고 천장이 4미터쯤 되어 보이는 긴 통로가 보였다.

사람들 몇몇이 통로를 따라 걷다 중간쯤에 이르더니, 빛이 새어 나오는 분절된 틈으로 하나, 둘 자석처럼 쏙쏙 빨려 들어가 사라진다.

나 역시 음료를 조심스레 들고 그들을 따라 들어섰다. 다시 환한 빛에 눈이 적응하자 ‘아!’ 하는 작은 탄성.

빛을 가득 채운 초록의 정원이, 거대한 산수화 병풍을 잇대어 놓은 듯 눈앞에 나타났다.

조금 전 지나온 복도는 기하학적인 침묵의 공간이다. 반면 이곳은 불규칙한 자연의 곡선들이 흘러간다.

마치 음악에서 리듬이 서서히 고조되는 것처럼, 암흑의 공간에서 서서히 밝음으로, 좁고 긴 인공적인 공간에서 개방된 자연적인 공간으로의 극적인 전환이 흥미롭다.

긴장과 이완의 반복으로 리듬 감각의 세포들이 몸에서 깨어난다.


중국 당나라 때 그림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현종이 화가 오도자(吳道子)에게 황궁 벽면에 산수화를 그리게 했다.

실력이 출중했기에 모두가 그 빼어난 그림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오도자는 자신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림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나도 오도자처럼 유리 벽에 난 문을 열고 정원으로 들어섰다.

가운데 키 큰 벚나무가 꽃잎을 떨어뜨리고, 산딸나무, 굴거리나무 등이 벽을 따라 서있다.

그사이에 중심을 잡은 낮은 관목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들이 돌무더기 사이에 식재되어 있다.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실내에서는 자연의 관조를,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가니 관조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그림 속의 인물이 된 것처럼 정원을 천천히 노닌다. 햇빛이 부드럽다.


오도자의 일화는 이제 다가올 미래를 예견한 것일까? 머지않아 그와 같은 유사한 가상 체험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라면 인생이 그림처럼 화려한 듯 보이지만, 결국엔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홀로그램처럼 사라지는 무상함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와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려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아까 다른 건물에서 보았던 연인 중에서 여자가 벚나무 아래를 걷고 있다.

떨어지는 꽃을 눈으로 좇는 것일까, 잠시 자리를 비운 연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일까? 시간이 점점 느리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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