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유희의 작업
좋아하는 일에 한동안 빠져본 적이 있으신가요? 나는 가끔씩 사용하지 않았던 감각들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 때 경험하곤 합니다.
퇴화된 줄로만 알았던 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것 같아요. 생명의 기운이 흐르는 봄을 맞이한 청춘처럼 순간이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
내일에 기대와 설레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건 마치 사랑할 때와 비슷하죠. 아마 신이 있다면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 때 얼마나 즐거웠을까 상상해 봅니다.
예술에 관계된 일은 인간에게 눈앞의 삶과 다른 이면, 영적인 세계를 엿보게 합니다.
돌하르방미술관의 김남흥 호스트는 제주의 돌에 매료되어 돌을 조각하며 산지 25년이 넘었습니다.
예술과 지극한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는 꾸준히 자신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냅니다.
미술관에 이어 카페, 체험장, 숙소 등이 하나둘씩 새로 지어지며 모양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 걸까요? 산책로로 된 길을 따라서 걷다가 나무 위 근사한 오두막과 그네가 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나무의 가지들은 오래전에 오두막 밑에서 자라난 것처럼 창문, 벽을 뚫고 밖으로 뻗어있습니다.
SNS에 일지를 쓰듯 이따금씩 돌집 작업 진행 과정을 올리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공 조형물을 제작하는 일상들을 공유합니다.
그가 제주의 돌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실험하며 교육하는 일련의 활동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중에서 돌을 다루는 작업은 조금 더 특별합니다.
작업자의 힘과 연장, 자연 재료 사이에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떤 연장을 선택하느냐부터 작업 속도도 영향을 미칠뿐더러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가 가진 특성들입니다.
재료가 가진 결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작업을 지속해 나가야 합니다.
매 순간 부딪히는 상황과 시간적 연속에서 발생하는 우연의 선택들이 조각의 매력이자 그 결과가 그 작업의 특별함이 되곤 합니다.
특히 기공이 많은 현무암은 더욱 그렇겠죠. 산을 오를 때 날씨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조각 역시 나의 의지로만 되는 것은 결코 아니어서 겸손의 미덕을 자연스레 갖게 마련입니다.
이런 작업의 특성들이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돌작업에 헌신하도록 이끌었을까요?
그가 한 신문사의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매 작업에 진지하고 공부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합니다.
양심을 지키면서 숙명처럼 하는 작업과정이 수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야 진정한 이해의 울림을 느낄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삶을 현명하게 사는 바탕이 되죠.
가끔은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오롯이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예술의 지난한 과정이 수련의 도구가 되고 삶의 윤리가 됩니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 역시 취리히 볼링겐의 호숫가 근처에 땅을 구입하여 12년 동안 점진적으로 탑과 건물을 지었습니다.
돌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었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때때로 나는 내가 풍경과 사물 속으로 퍼져 들어가 각각의 나무속에, 출렁이는 파도 속에, 구름 속에,
오고 가는 동물 속에, 그리고 그 밖의 사물 속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기서는 창조의 고통이 완화되며 창조성과 유희성이 거의 하나로 어울린다."**
호스트는 투박하고 서툰 기예를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요소로 정의합니다.
이러한 소박함에는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 편하고 즐거운 감정이 담겨있다는 것이죠.
장인들이 그렇듯, 그는 자연에 순응하고 정직하며 성실함이라는 미덕 위에서 나무처럼 성장하는 예술가의 삶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벙거지 모자에 흙빛처럼 그을린 얼굴, 깊은 눈빛, 특히 낮고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그의 모습이 흡사 제주를 지켜온 돌하르방을 닮아가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