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여행 (1)
그냥 미세먼지가 없는 나라에 가고 싶었다. 거기에 조금 더 보태서, 겨울이니까 (+ 1월이었다.) 따뜻한 곳에 가고 싶었고 마침 퍼스에는 대학 동창도 살고 있었다. 그리고 대자연을 좋아하고 '우리 언젠가는 캠핑카로 투어를 해보자'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여행지는 서호주로 결정됐다.
정말 간단하지 않았다. 쌓이고 쌓인 회사일로 호주 비자도 출발 일주일을 앞두고 가까스로 신청하고 (+ 며칠은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반나절 만에 나왔다. 인*파* 짱) 경찰서에 가서 발급 받아야 하는 국제운전면허증도 엄마한테 부탁해서 가까스로 받고 (+ 욕하면서도 해주는 츤데레 엄마 짱) 겨우겨우 여행 일정만 손으로 대충 짜고 캠핑카만 예약해두었다. (+ 잘 곳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한 나의 멘탈 짱) 그리고 업무 인수인계를 새벽까지 정리한 출발 당일 날... 폭설이 내렸다.
내가 이렇게까지 기를 쓰고 여행을 가야 하나-라는 회의감을 없애 준건 엄마아빠의 치열한, '이런 날씨에 공항까지 리무진버스 vs. 지하철 중에 뭐가 더 빠른가'를 주제로 한 부부싸움 덕분이었다. (+ 새벽 5시에 리무진버스 회사에 전화통화를 시도하는 엄마를 보며 '아니, 나를 저렇게까지 보내려고 하는 이유는 뭔가'라고 생각한건 비밀) 그 덕분에 나는 폭설 때문에 도로가 막히더라도 체크인 시간에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시나 모를 급한 업무 때문에 값비싼 로밍을 걸고 왔어도, 폭설 때문에 비행기가 인천공항에서 3시간 지연됐어도, 캠핑카 말고는 뭐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어도, 어쨌거나 나는 한국을 떠나서 홍콩을 거쳐 서호주(퍼스 국제공항)에 도착을 했다. 했다! 했다!! 도착을 했다!!! 내가 호주에 도착을 했다!!! 하지만, 내 짐가방은 오지 않았다.
퍼스 국제공항에서 낯선 여자가 낯선 억양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내 짐은 아직 홍콩에 있다며, 미안하다며, 홍콩에서 퍼스로 오는 비행기는 하루에 하나(밤 10시 30분 도착)니까 내일 밤 11시에 짐을 찾으러 오라며,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화가 나면 영어가 잘 되는구나. 또 깨달았다. 짐이 오지 않았다고 얼굴이 벌개지며 화를 내는 사람은 나 밖에 없구나. 그리고 또또 깨달았다. '미안하니까 보상으로 100달러를 줄게.'라는 말을 듣고 화가 풀어지고 있는 내 마음을(?!).
그랬다. 그렇게 회사에 업무는 쌓인 채로, 우리집에 부부싸움을 일으킨 채로, 내 짐은 홍콩에 떨궈둔 채로, 여행 계획은 없는 채로 그렇게 호주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