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없어도 일상의 변화가 거의 없을 거라는 걸.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따라 영상을 보며 반나절을 보낸다.
뭔가 엄청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가깝다.
아이들이 기관에 가면 내내 걷고도 싶었고, 책도 실컷 읽고 싶었고, 글도 쓰고 싶었다.
둘째가 집에 있을 때는 아이들을 8시쯤 재우면서 같이 잠들었다가 새벽 3시쯤 깨서 책을 보곤 했다. 알람을 맞춘 것도,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다.
몰래 읽는 책이 맛있었다.
아이가 '엄마'하면서 나를 찾기 전까지 제한 시간을 알 수 없는 책 읽기는 달콤했다.
3월 2일 첫째는 초등학교, 둘째는 유치원에 입학했다.
둘째가 유치원에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에 자주 말했다.
"와, 이안이는 좋겠다. 유치원 가서."
유치원에 처음 다녀온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가 유치원에 가서 좋아?"
내가 반복해서 했던 말을 바꿔 묻는 아이에게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좋기만 할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네. 마음속 무언가가 무너진 것 같아.'
낮에 특별하게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아이들과 함께 8시에 잠들어 7시에 일어난다.
이것은 마치 우울증.
책은 10쪽도 읽기 어렵고, 무기력하다.
아이 먹이느라 차렸던 점심을 그냥 지나간다.
아이들을 보내고 감자 하나를 구워 아침과 점심으로 먹었다.
아이에게 맞추어 살던 세월이 7년이다.
첫째는 6살일 때 처음 유치원에 갔다.
둘째는 이번에 5살이 되어 유치원에 갔다.
첫 3년은 항상 첫째와 그다음은 둘과 또 그다음은 둘째와 보냈다.
아이들의 입학을 앞두고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했다.
공부를 해야 하나, 일을 해야 할까.
지금은 무엇도 하지 못하고, 집에 있다.
금요일에는 결심한 대로 걸어보자고 호숫가를 걸었다.
그토록 간절했던 혼자만의 시간에 아이가 아른거렸다.
'빈 둥지 증후군'을 벌써 겪는 건가.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주머니들이 여기 좋다며 나를 지나간다.
저 아주머니들은 이 길을 다 지나가신 거겠지.
마음의 허함을 무엇으로든 채우셨겠지.
먹은 것 없이 3시간을 걸으니 고프다.
눈이 부시다. 다음에는 저 아주머니처럼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올 것이다.
개를 산책시키는 아저씨를 보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마음 놓고 목욕도 할 수 있고, 책 읽다가 안아 달라고 중단시킬 사람이 없는데
나는 집에 있다. 멍하게 핸드폰을 보면서.
빈 둥지는 아니었다.
둥지에 남은 것은 나.
거기에 누워 내키는 대로 쉬다가
언젠가 때가 되면 나가야지.
무엇인가 입에 물고 돌아오는 날도 있을 테고,
물결에 놀라 하늘만 날다 지쳐 돌아오는 날도 있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