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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넘기 Mar 28. 2023

결함 인간

-집 안의 일 말고, 집 밖의 일을 하라는 세상에서


"내가 뭔가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말하는 순간 내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변명들이 올라왔다.

나는 결함이 없다고 필사적으로 투쟁했다.




지금 내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타고난 결함으로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하는 삶(자신감 있는 삶)과 현재의 삶의 간극을 '선천적인 결함'이라고 치부하고 싶었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자신감의 근간이 능력이라고 여겼다.

능력은 무엇인가?


국어사전은 능력'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인가?




일은 무엇인가?




표준대국어사전에서는


일이란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나는 일을 어디론가 출근을 해서 정당한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 것으로 여겼다.


출근하지 않으므로 집에서 하는 양육, 식사 준비, 설거지, 청소는 '일'이 아니었다.

집에서 하는 일에 대한 급여 개념이 없으니 '일'이 아니었다.




매일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를


결함 인간



이라고 칭하고 나서야


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내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 머릿속 일하는 여성은


곱게 화장을 하고, 세련된 옷차림을 한 채 고개를 들고 걷는다.


사람들과 만났을 때 선뜻 밥을 산다.




왜 이런 이미지가 내 안에 사는가?

드라마와 영화, CF의 이미지가 그대로 들어와 있다.


엄마는 말했다.





아빠는 엄마 일하는 거 좋아해. 일하면 아빠 표정이 달라진다니까.







엄마는 이 말을 반복하며 밖으로 출근했다. '일'을 하기 위해.




어릴 때 이웃 친구는 매번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엄마는 매일 생선을 굽고, 찌개를 끓였다.


밖에서 신나게 놀고 있으면 이제 들어와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 목소리.

한 번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다. 귀찮고, 싫었다.


당연히 받는 식탁이었지, 엄마의 '일'에 의한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별로 고맙지 않았다.


밖에서 일하는 아빠만 고되다고.

어린 나이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순간 엄마가 '일'을 하고, 나는 원하는 대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동네 슈퍼 냉동 코너 앞에서 피자를 고를지 핫도그를 고를지 고민했다.


그렇게 먹으면서 살이 '터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살이 찌면서도 원하는 음식과 저녁 시간의 자유를 좋아했다.




화장을 하고, 밥을 사는 건 지금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결함'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스스로가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말하는 '경력이 단절된'이라는 프레임이 갇힌 채.




'일'하는 존재가 되지 못한 '대기'중 인간. 언젠가는 일하러 '나가야' 하는.




여전히 일하고 있음에도 '경력'이 '단절'되었다고 말한다.

육아라는 다른 경력을 쌓고 있다는 것은 무시된다.




집 안의 '일'을 두고, 집 밖의 '일'을 하라고 장려하는 세상은


양육하는 사람을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으로 만든다.








처음 글을 쓸 때는 '결함'이라고 표현한 것이 자기 연민이고 자기 보호라고 결론 내려고 했다.


글의 흐름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큰 아이는 6살에 첫 기관에, 둘째는 5살에 첫 기관에 갔다.

아이들을 그렇게 양육하기로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에 속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 괴로운 것은



이 선택을 하지 않았을 때 가졌을 경력과 돈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결함이란 부족하거나 완전하지 못하여 흠이 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내게 경력과 돈의 결함이 있는 것이지

사람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것을 가졌으나 저것이 없다.

어떤 이는 저것을 가졌으나 이것이 없다.




내가 결함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것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 말을 곱씹을수록 '그래, 결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눈물 쏟을 말도 아니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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