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너는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도 유전자에 있는 걸까. 대체 유전자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우리 집에는 아이들 공부방 겸 내 서재로 사용하는 방이 있다. 한쪽 벽면엔 큰 책장이, 다른 쪽 벽면에는 두 아이의 책상이 나란히 있고, 그 옆에 ㄱ자로 내 책상이 있다. 올해 초 아이들의 공부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책상을 새로 구입해 배치한 결과물이다.
공부방을 재정비하던 날 아이들은 신나서 자기 책상은 자기가 정리하겠다고 나섰고, 한 동안은 잘 정돈된 책상에 나란히 앉아 공부 혹은 그림 그리기 등을 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또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던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공부할 거리, 그림 그릴 거리 등을 주섬주섬 챙겨서는 식탁에 앉아 그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1호야, 2호야. 왜 공부 나와서 해?"
"그냥 밖에서 하고 싶어서!"
어디선가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하려면 거실에서 공부하게 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유는 다소 어수선한 데서 공부를 하면 집중력을 더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 발달이 잘 되고, 공부를 더 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식탁에서 공부하는 것을 허락했다. 비록 (내 기준에서)말끔히 정리해 놓은 식탁은 어수선해졌지만 '너희의 집중력이 향상된다면 내 한 몸 불사 질러 치우고 또 치우리~' 마음먹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거실로 나와서 공부하는 이유가 단순히 '책상 정리를 하기 싫어서'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큰 맘 먹고 새로 들인 책상은 공부를 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정리하기 귀찮은 것들 대충 쌓아 묻어놓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있는 것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돼 있는 책상을 바라보며 아무리 정리하라고 소리쳐도 아이들은 어디부터 손을 대서 치워야 할지 몰랐고, 그런 아이들을 보는 나도 속에서 천불이 났다.
"내가 이 꼴 보려고 돈 들여서 책상까지 바꿔줬는 줄 알아!? 책상이 공부하라고 있는 거지, 이렇게 아무렇게나 던져 놓으라고 있는 거야!?"
대차게 혼을 내다가 돌아보니.. 헐... 내 책상도 만만치 않았다.
전날 밤늦게 일하다가 마신 커피 잔 2개, 낮에 봤던 원고 프린트물 서너 개, 아이가 풀고서 채점해 달라고 준 문제집 두어 권. 기가 찼다. 내가 아이들에게 정리 안 한다고 소리를 지를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성해야 할 판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은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정확하게, 원인은 나다! 나 역시 정리에 젬병인데 이 아이들이 대체 누굴 보고 정리를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은 부모를 모델링하며 성장한다. 부모의 말투나 행동 등을 학습해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의 잘못된 말이나 행동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 번 깨닫는다. 아이에게 '예쁘지 않은 말'이라고 쓰지 말라고 하는 표현도 사실은 내가 썼던 것이고,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금지시킨 것도 사실은 내가 했던 행동인 것이다.
물론 아이가 외부 활동을 하면서 배워오는 것들도 상당수지만 대부분의 기본적인 것들은 거의 부모에게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에게 보여주는 부모의 모습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도 참 어이가 없게, 그 탓을 아이에게 돌려 '넌 대체 왜 이러는 거야!'라고 혼을 낸 후에야 '아차, 나 때문이구나' 다시 자각하게 된다. 책상 정리가 발단이 된 그날처럼.
책상 정리를 잘 하지 않는다며 버럭질을 한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 너저분한 책상, 마시고 치우지 않은 컵, 대충 얹어 놓은 책들이 전부였을 것이다. 정작 스스로는 돌아보지 않고 아이들만 탓한 내가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얼마나 형편 없는 엄마인지 뜨끔했던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
엄마에게 혼이 나 침울한 표정으로 책상 위에 늘어진 것들을 하나 둘 들어 올리던 아이들에게 말했다.
"어머! 얘들아~. 엄마 책상 좀 봐. 세상에나~~. 저게 뭐야, 대체! 엄마는 어쩜 책상을 저렇게 쓴다니~. 엄마 책상은 보지도 않고 너희한테만 뭐라고 했네. 미안~(애교). 엄마도 얼른 책상 치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