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아침 시간, 둘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고 옷을 입히고 있는데 아이의 다리 피부가 '건조함'이라는 표현에 딱 맞는 상태였다. 아무리 요즘 날씨가 보습이 중요한 때라지만 꺼칠꺼칠한 것이 살짝 날카로운 것만 닿아도 금방 갈라져 피가 스며 나올 것 같았다. 등원이 늦어질까 초조했지만 로션을 가져와 듬뿍 발라준 후에야 마음이 편했다. '어젯밤에 씻기고 로션을 안 발라줬었나.', '에휴.. 애미가 바쁘다는 핑계로 너한테 참 소홀했구나'라는 후회와 반성도 빠지지 않는다.
같은 날, 아이의 침대를 정리하는데 갑자기 손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은 느낌이 났다. 뭐지? 손을 살피니 마디 접히는 부분이 갈라져 피가 나고 있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것도 아니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계속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곳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러고 보니 내 손은 건조하다 못해 몇 년째 가뭄이 이어진 마른땅 같았다. 거친 것은 물론이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갈라질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드넓은 사막에 말라빠진 나무가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 스쳤다. '로션을 바를까 말까.', '귀찮은데 이것까지만 하고!' 끝내 나는 로션을 바를 생각은 하지도 않고 스며 나오는 피를 휴지로 살짝 눌러 지혈한 후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아이들이 내놓은 물컵을 맨 손으로 빠르게 설거지하려다 따끔한 느낌이 들어 그제야 손이 갈라졌다는 것을 지각했다. 그러면서도 로션을 바르거나 밴드를 붙일 생각은 안 하고 컵 설거지를 마쳤다.
엄마가 된 이후로 나 자신을 돌보는 것에 인색해졌다. 비단 로션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남편을 챙기고, 아이를 챙길 뿐이지 정작 나 자신을 챙기는 것에는 게을러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씻을 때마다 로션을 챙겨 꼼꼼히 발라주지만 나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거나 대충 날림으로 바를 때가 많다. 남편이나 아이들의 밥상은 반찬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담아내지만 나는 기사식당 스타일, 조금 고급스럽게 표현해서 뷔페 스타일로 접시 하나에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다 때려 넣고 먹는 것이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굳이 뭘 해~'라는 마음도 있고, '귀찮아~'라는 마음도 있고, '아까워~'라는 마음도 있고, '챙기지 않아도 불편한 것 없으니까~'라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아가씨 때와 달리 잘 보일 특정 대상이 없기 때문일까. 로션에 대해서는 '어차피 금방 또 손에 물 묻힐 텐데 뭐하러 발라~'라는 생각이 확실히 있었다.
생각이 이어질수록 내가 어릴 적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었던 억척스럽고, 게걸스러운 아줌마의 모습이 바로 지금의 나는 아닐까 싶어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쩌면 나는 나를 돌보지 않음으로써 나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나의 가치를 스스로 낮게 평가하고 있는 걸 수도.
그날 저녁 화장대를 뒤져 핸드크림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예전에 길을 가다 싸게 팔아서 샀다가 묵혀둔 것, 선물로 받았다가 묵혀둔 것, 사은품으로 받았다가 묵혀둔 것.. 십여 개나 됐다. 그중 한 개는 내가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식탁과 주방 조리대 사이에, 또 한 개는 내가 일을 하는 책상에, 또 한 개는 화장대 위에 배치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바르기로 했다. 어차피 안 써서 곧 썩을 것 같은 이 핸드크림들을 내가 구원해주기로.
금방 또 물 묻힐 손이지만 왁스 코팅된 나무 바닥은 물이 묻어도 금방 스며들지 않는 것처럼 핸드크림으로 내 손을 코팅하겠노라고~!
나를 돌보는 것은 좋은 피부과에 가서 리프팅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마사지샵을 회원제로 끊어놓고 사모님 소리 들으며 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비싼 레스토랑에서 드레스 입고 칼질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성급 호텔에서 욕조에 장미 띄워놓고 와인을 마셔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돌봄은 아주 작고 사소한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실천이 모이면 나의 가치는 분명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에필로그.
얼마 전 친구에게 ㄹ사의 핸드크림을 선물 받았다. 아까워서 안 쓰고 화장대 서랍 한쪽에 그것만의 공간을 내줬는데 아까운 마음을 내 손에 양보하기로 했다. 아까운 건 고가의 핸드크림이 아니라 내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