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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Jan 17. 2022

어느 사교육 무식자의 고백

#육아일기 #육아에세이

"애 학원을 보내야 하나?"

내게 이렇게 묻는 지인들이 있다. 나의 큰 아이보다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인들이다. 특히 초등학생이거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인들은 더욱 진한 '궁서체'로 묻는다. 아이의 친구들은 다 학원을 여러 곳 다니는데 자신의 아이는 그렇지 않아서 걱정이 되고, 또 부모로서 너무 무관심하다고 흉이라고 볼까봐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김빠진 콜라처럼 맹한 대답을 내놓는다.


"애한테 필요할 것 같아?"


ⓒ픽사베이

사실, 나는 사교육 무식자다. 여타 엄마들처럼 몇 살엔 무엇무엇을 시켜야 하고, 어디가 좋고.. 그런 정보는 잘 찾아보지 않는 데다 들어도 한 쪽 귀로 흘려버리고 만다. 관심 자체가 없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게도 뭣 모르고 휩쓸려 이것저것 시켰던 과거가 있다.


코로나19 이전, 큰 아이가 1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학원 배불리는 데 크게 기여한 VIP 학부모였다. 소위 말하는 '학원 전기세 내 주는 엄마'가 바로 나였다. 아이의 학습 성과는 없는데 돈만 따박따박 내는 부모 말이다. 갖다 부은 돈이 얼만지.. 어학원 1년 보냈는데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를 보며 얼마나 탄식을 했는지 모른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 실패 요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첫 째, 휘둘리지 않는 심지가 없었다

나는 애초에 심지가 들어 있지 않은 불량품이었다. 아이와 함께 노는 친구들이 한다고 하니 우르르 몰려가 학습지를 신청했고, 팔랑대는 귀를 쫓아 어학원에 등록했다. 또 친구 따라 축구교실에 다녔고, 같이 할인해 준다기에 수영도 시켰다.


'다들 한다고 하니까', '어차피 해두면 좋으니까'라는 이유를 마구잡이로 갖다 붙이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내 아이만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라는 불안은 내 결정이 옳은 것이라는 거짓된 확신을 심어줬다.


둘 째, 학원만 보내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학원 배만 불려준 엄마가 된 결정적인 이유다. 학원에 보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어차피 공부는 학원에서 하니까 나는 공부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생각은 결국 약 1년 동안 돈ㅈㄹ만 하게 만들었다.


당시 아이는 학습에 관련해서는 두 개의 사교육을 하고 있었다. 국어&수학 방문학습지와 어학원이다. 모든 것을 전적으로 선생님께 일임했다. 특히 어학원에 대해서는 매일 숙제가 있는 것도 몰랐고, 어쩌다 아이가 숙제 얘기를 하면 '알아서 하겠지'하고 넘겼다.


 아이의 숙제를 봐준 적도 없다. '선생님이랑 공부하는데 굳이 집에서까지 해야 해?', '집에서 내가 봐줄거면 돈을 써서 시킬 필요가 없잖아!'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뒤처질까 봐 학원을 보내면서 '놀 수 있을 때 놀아야지'라는 이중적인 마음도 있었다.


학원에서 배웠다고 그대로 끝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가정에서도 수업의 내용과 연계된 예습 복습이 병행돼야 했다. 내 아이는 사교육 무식자를 엄마로 둔 탓에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


이게 바로 사교육 무식자의 대표적인 헛짓거리다.


ⓒ픽사베이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아이는 현재 학원에 다니지 않고 있다. 사교육이라고 한다면 화상수업과 전화 수업이 격주로 진행되는 스마트 학습기와 주 1회 화상수업을 하는 온라인 영어 학습 정도다. 그 외에는 나와 아이가 함께 공부 계획을 세워서 행하고 있다(주로 복습). 대외적으로는 자기주도학습을 하겠다는 당찬 포부에 의한 것인데 사실은 사교육에 실패했던 지난 과오로 '어차피 집에서 계속 (공부를)봐줘야 하는데 굳이 학원에 돈 써야 해?'라는 오만함이 생긴 까닭이다.


그렇다면,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고 반에서 공부를 못하는 측에 속할까? 감사하게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담임 선생님은 전화 상담 때 "영재나 1, 2등 수준은 아니지만 학원 다니지 않는 것 치고 잘 한다"고 평가하셨다. 물론 부모를 위로하기 위한 말씀이실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수행평가라고 봐 오는 문제나 생활기록표 등을 보면 다행히 아직까지는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는 듯 하다. 그 정도면 됐다 싶다.


세 아들을 사교육 없이 서울대에 진학시켰다는(혹은 세 아들이 사교육 없이 서울대에 진학했다는)<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박혜란 지음/ 나무를 심는 사람들)>의 작가 박혜란 선생님은 아이가 사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더 집중했다고 했다. 학교 수업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를 느꼈다고.


나의 아이도  그런 편이다. 덕분에 수업 태도가 좋다고  담임 선생님도 평가하셨다. 물론 이 역시 부모를 위로하기 위한 말씀일지도 모르나 이것이 아직까지는 학원 없이 생활하는 것의 장점이 더욱 크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물론 이런 생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보통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사교육에 초연했던 부모들도 학원 알아보는 데 열과 성을 다한다고 한다. 갑자기 어려워지는 수업 내용에 사교육 없이는 진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학원에서는 공부의 스킬이나 전문적인 교육이 가능하니 가정에서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효능이 있을 것이다 .


그래서 내 아이 역시 언젠가는 여러 학원을 전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일단 그때까진 집에서 지금처럼 해 보기로 했다. 그때 가서 아이가 꼭 학원에 가야 할 수준이고, 아이가 다니길 원한다면 보내면 되는 거고.


ⓒ픽사베이


사교육 무식자로서 누군가 '학원을 보내야 하나?'라고 묻는다면 나는 '예스'라고도, '노'라고도 하지 않는다. 대신 부모가 중심을 잡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중요하다는 너무도 뻔한 조언을 내놓는다. 단순히 '다녀야 한다기에', '우리 애만 안 다니면 안 될 것 같아서'라는 마음은 아니었으면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그 학원의 수업이 꼭 필요한지'다. 사교육의 주체가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돼야 한단 여기에 부모가 아이의 학습 수준과 능력, 성향 등과 일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또한 보내기로 결정했다면 유명하다는 학원보다는 내 아이의 수준과 성향을 고려하길 바란다. 더욱이 사교육 기관만 맹신하고 손을 놔서는 안 된다는 말도 꼭 하고 싶다. '학원 보냈으니까 땡!'이라고 생각했다간 나처럼 돈만 열심히 퍼다 나르는 꼴이 될 수 있다. 적지 않은 돈 쓴 값하려면 그만큼 가정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사교육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단연 '독서'다. 공부머리 독서법(최승필 지음/ 책구루)을 비롯 여러 전문가들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가. 초등학교, 특히 저학년일 때는 단편적인 과목의 성적보다 독서를 통해 문해력을 높이며 생각의 폭을 넓히고 기반지식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전히 잘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육아에는 정답이 없는데 사교육은 더 그런 것 같다.

정답을 찾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주변 엄마들에게 물어볼수록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기만 한다. 그럴 때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주관일 것이다. 여기서 그 주관의 기준은 내 아이가 돼야 할테고. 이는 사교육의 시행 여부보다 우선돼야 하는 조건이다.


그러니 "우리 휘둘리지 맙시다. 모든 기준은 '내 아이'에게 둡시다. 그리고 관심을 가집시다."라는 말을 웅변처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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