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싸름한 에스프레소의 달큼함처럼
내 안의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비 예보가 있는 추적추적한 날씨. 전날의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아이들을 등교시키자마자 에스프레소바에 가기로 했다. 나와 한, 나만의 약속이었다.
새벽녘에 한차례 비가 뿌려진 때문인지 공기가 유독 맑고 시원했던 아침. 무거운 마음과 설렘을 동시에 안고 그곳으로 향했다. 햇살이 드는 바깥쪽 자리와 안쪽 구석진 자리를 놓고 고민하던 끝에 결국 선택한 곳은 구석진, 하지만 어둡지는 않은 안쪽 자리.
쌉싸름한 에스프레소의 달큼함 ⓒ이니슨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머금고 챙겨 온 책을 펼치고 있는데 한 여성이 들어왔다. 내 또래 정도 됐을까. 내가 고민했던 딱 그 자리에 앉아, 언젠가의 나처럼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놓은 한 여자. 나처럼 공허한 눈동자로 이따금 커피잔을 입술에 갖다 대는 그의 옆모습에선 나처럼 복잡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어떤 일로 마음이 저리도 소란해 보일까. 어떤 한숨이 그의 안에 가득한 걸까. 어떤 고요함이 필요했던 걸까. 어떤 힘겨움이 이른 아침, 혼자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그의 침묵이 꼭 나를 보는 듯해 맘이 쓰였다. 그러다가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조용히 내 안에 집중했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곳에서 나는 속삭이고 있었다.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영혼의 단짝이라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내 안의 나는 그 누군가를 향한 기약 없는 기다림에 창 밖의 겨울나무처럼 메말라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새순을 틔울 준비를 한 채로.
우리는 종종 '나만의 힘듦'을 마주 한다. 나만 이렇게 힘들다는 마음. 때문에 세상과 알 수 없는(혹은 명확히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해야 하는) 무엇을 향해 분노하고 칼을 간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 모두에겐 하나쯤의 아픔은 있는 모양이다. 그 종류와 깊이는 다르겠지만 저마다의 부족한 구석이 있는 거겠지. 나 혼자만 이렇게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누구에게든 그런 아픔 한 두 개쯤은 있는 거겠지. 여전히 시선이 창 밖 저 멀리에 머물고 있는 그를 보며, 잊고 있었던 그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결국, 각자의 아픔을 어떻게 마주하고 대처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내게는 거부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있다. 내가 바꾸려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것들을 차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차피 수시로 찾아드는 스트레스라면 어떤 얼굴로 그것들의 앞에 서야 할지, 어떤 방법으로 그것들로부터 나를 강인하게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일차적으로 찾은 방법은 혼자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내 마음을 알아줄 누군가를 찾고 싶지만 동시에 혼자이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란... 홀로 나를 들여다보며 내 안의 나를 만나 더 단단해질 방법을 찾는다. 내 소란스러운 맘 속 어딘가 있을 봄날 같은 것을 기대하며.
에스프레소 한 모금, 쌉싸름한 그것을 입 안에 머금고 살살 굴리다 보면 달큼한 맛이 진하게 올라온다. 내가 느끼는 사약맛 고독함과 절망도 즐기듯 음미하다 보면 분명 달콤한 구석이 있을 테지. 당당히 마주하면 한 뼘 더 단단해지겠지.
그래서 오늘도, 혼자 커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