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타인의 이혼 이야기가 내게 미치는 영향

쉽지 않았을 선택에 박수를 보내며

by 이니슨

요즘들어 '이혼'이 키워드인 글들이 브런치(모바일) 인기 순위를 상당수 차지하고 있다. 나 역시 그 글들을 공감하며 재밌게 보고 있다.


우리는 왜 타인의 이혼 이야기에 이렇게도 관심이 많을까. '이혼이 무슨 자랑이라고!!'라며 욕을 하려고? 남 얘기에 이러쿵 저러쿵 참견이나 하려고? 그런 마음보다는 내가 하지 못한 것,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은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그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 위한 용기를 얻기도 할 것이다. 이혼으로 더 단단해졌다는 그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며.

또 몰랐던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타인의 이혼 이야기가 내게 미치는 영향 ⓒ픽사베이



결혼 전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았다. 때문에 결혼으로 하나가 되더라도 가장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오는 다름에 환경의 다름까지 더해져 그들 사이에는 꽤나 큰 간극이 생긴다(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정말 존경스럽게도!) 연애 때는 좋아하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상대에게 좀 더 귀를 기울이고 맞추려 노력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잘 보이려고 감추는 경계가 낮아진다. 때문에 연애때와 다른 모습을 마주하며 간극은 더 넓어지기 쉽다.


더욱이 결혼생활은 꿈꿨던 장밋빛 미래와는 다르게 기본적인 마인드부터 생활습관, 가족의 풍습까지... 다방면에서 상대와 내가 다른 인감임을 느끼게 하지 않나. 여기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간극을 좁힐 수 있겠지만 반대로 부정하고 탓하는 순간 같은 극의 자석을 만난듯 튕기기 십상이다.


그 간극은 서로가 합의해 비슷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좁힐 수 있다. 하지만 노력의 추가 어느 한 쪽으로 기운다면, 게다가 그 기간이 길어진다면.. 더 멀어질 뿐이다. 문제의 근원이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역시 간극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한 순간 와르르, 모든 것이 무너져 그 간극조차 남아나질 않게 된다. 물론 노력의 양은 물리적이지 않아 셈할 수 없지만 '내가 다 맞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간극은 좁힐 수 없는 것이 된다.

타인의 이혼 이야기가 내게 미치는 영향


그럼 두 사람의 사이는 대체 어떻게 좁혀야 할까. 어떻게 노력의 균형을 맞혀야 할까. 글쎄, 나도 아직 답을 찾는 중이다. 사람들은 '대화'를 많이 하라고 하는데 이미 간극이 벌어진 상태라면 대화조차 원활히 될 리 없다.

그래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와의 이혼을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둘 사이에 아이까지 있다면 '애를 봐서라도 참고' 살며 병든 관계를 지속하게 될 뿐.


이럴 때 타인의 이혼 이야기는 묘한 쾌감을 가져온다. 그들 역시 이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민을 했을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용기와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은 플러스!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배우자의 입장을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배우자 역시 타인으로서 이해하려는 동기가 마련된다.


그래서 수시로 그들의 이혼 이야기를 기웃거린다. 대리만족을 하며 나를 돌아본다.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고민도 해 본다.




배우자가 가장 친한 친구라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사는 걸까. 그들은 흔히 얘기하는 영혼의 단짝이라도 되는 걸까. 오늘도 그게 참 궁금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며느리도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