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품의서를 제출했다. 별 것 없는 지출결의서였다. 지난했던 회사 일과 완벽한 이별이었다. 이제 집으로 출근하고 집으로 퇴근하는, 전업주부가 됐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이 글이 전업주부를 비하하려는 목적이 아님을 밝힌다. 앞으로 이 카테고리는 전업주부로서 애도 잘 보고, 집도 잘 치우고, 내조도 잘 하고 싶은 불안정한 한 사람의 희로애락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오랜 시간 재택근무를 한 터였다. 업무량이 많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를 책임지며 일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도, 육아도, 살림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나를 보며 '대체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자괴감에 빠지길 수만 번 반복하며 이럴 바엔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럴수록 심신은 날로 지쳐 햇볕에 바짝 마른빨래처럼 바삭해졌다. 차이가 있다면 빨래에서는 태양의 포근한 향이 나는 반면 내게선 구린내만 풍긴다는 것. 일을 그만 두면 홀가분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초등 5학년 아들, 초등 2학년 딸. 결단을 내려야 했다.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끝까지 내 의지로 그만두는 것이라며 자존심의 끝에 매달렸지만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실패라는 것을.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처절한 실패. 물론 이 선택에는 남편의 강요도 크게 작용했다. 어릴 적 할머니 손에 자란 그는 자신의 아이만큼은 엄마가 키웠으면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였으니까. 내가 육아도, 가사도, 일도 완벽하게 해냈다면 '싫어. 나 일하고 싶어!'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을까.
뭐 어때! 이제 지겹고 힘들었던 일에서 벗어나는 거야.
'나는 실패했어'라는 얼룩이 마음에 가득했지만 재빠른 방어기제는 최면을 걸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이제 벗어나면 그뿐이다. 잔뜩 웅크린 감정에 '애 잘 키우기'와 '집 잘 치우기', '남편 내조 잘하기'라는 '잘하기' 미션이 총알처럼 날아 들어 박혔다. 이제 '나'는 없고, '엄마'와 '아내'만이 남았다는 것이 서글펐지만 '원래 다들 그러고 살아'라는 뻔한 위로를 반복하며 또 최면을 걸었다. '놀고먹으면 좋지 뭐(사실 놀고 먹는 것도 아니지만)'라며 나를 다독였으나 심장은 '나는 일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고 소리쳤다. 무력해졌다. 나는 이렇게 사라지는 건가.
꽤 오랜 시간을 실패했다는 열패감과 상실감, 괜찮다는 자기 최면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면 열등감이 목 끝까지 차올라 무엇이든 하려 했고, 약속이 없어도 집을 나섰다. 동네를 산책하며 생각을 비우기도 하고, 혼자 커피를 마시며 주위의 소음에 묻히려고도 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선인들의 말씀처럼 나는, 서서히 괜찮아지려고 노력 중이다. 아니다. 괜찮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