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다, 밀키트는 요리가 아닌 이유를

가족의 끼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매한가지 아니던가

by 이니슨
밀키트 : 가족을 아끼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음식을 위한 가성비 있는 식재료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는 사람은 매 끼니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그들의 기호를 따져보고 식단을 계획하고 식재료를 준비해 조리한다.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 내놓는 것도 중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맛있게 먹는 가족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정성이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요리'다.


밀키트라고 다를까. 재료 준비와 손질 등의 과정이 다소 간편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요리가 아닌가. 가족을 생각하고 식단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요리가 아니던가. A부터 Z까지 모든 품을 들여 수고로움에 또 다른 수고로움으로 얹어가며 준비한 음식만이 요리는 아니지 않은가.




종종 밀키트를 이용한다. 어차피 한 번 먹을 거 재료를 일일이 준비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낫다는 결론 때문이다. 특히 밀키트는 짧은 시간에 고품질의 음식 조리가 가능해 예찬하는 편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우리 가족의 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평일에 어른의 밥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남편이 집에서 밥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나 하나 먹자고 어른의 것을 따로 하는 것은 번거로워 주로 아이들의 것을 같이 먹는다.


같은 반찬 또 먹는 것을 싫어한다. 김치를 제외한 반찬이 식탁에 여러 번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은 반찬을 재활용, 예를 들면 감자채볶음으로 전을 부치거나 나물을 모아 비빔밥을 하곤 했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남은 음식은 마치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라도 된 듯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 버려지던가.


미슐랭인 듯 평가한다. 이건 주로 남편의 영역. 집이 미슐랭 맛집이라도 되는지 그렇게 별점을 매기려 한다. 남편이 음식을 더 잘 만들기 때문이기도 한데 뭘 넣었냐 얼마큼 넣었냐 그걸 왜 넣었냐 얼마나 볶았냐 등 매번 보고서 검토받는 기분이다. 고추장을 찾는 날은 폭망. 내 모든 수고가 거품처럼 사라진다.


이런 대표적인 이유들로 밀키트를 애정하게 됐는데 식재료를 하나하나 구입해 조리하는 것에 비해 가성비 좋고 실패할 확률이 적다. 맛의 평가는 받을지언정 고추장을 대령해야 할 정도까진 아니다.


그래서!! 밀키트는 요리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한 리얼리티 TV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였다. 외부에서 일을 하는 여성과 가사를 하는 남성의 이야기였는데 남성이 밀키트로 만든 음식을 내놨더니 여성이 밀키트가 요리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럼 밀키트는 요리가 아니고 뭔데! 배달 음식 그릇째로 내준 것도 아니고 밀키트도 재료 씻고 준비해서 볶고 끓이고 해야 하거든!!!!


마음이 꼬여 '나는 밖에 나가서 힘들여 일하는데 너는 편하게 밥 하냐며 배알이 꼴리는 건가!', '과거 어머니 세대에서나 가능한 구시대적 발상이군.'이라며 열을 올리기도 했다.


밀키트를 사용하더라도 그것에 포함된 재료만을 사용하진 않는다. 맛을 배가시킬 수 있는 다른 식재료가 추가된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조리의 과정은 반드시 수반된다. 물론, 식단에 맞춰 준비해야 하고, 간단히라도 손질을 해야 한다. 그릇에 정갈히 담아내는 것도 다른 누가 아닌, 식사를 책임지는 이가 하는 일이다.




언제던가. 시부모님과 같이 식사하는 자리였다. 시가와 우리 집의 냉장고를 비교하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 시가의 냉장고는 냉장과 냉동뿐만 아니라 김치냉장고에까지 음식이 가득 차있어 필요한 음식이나 식재료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또 무엇이 들어있는지 가늠도 잘 되지 않는다. 젊었던 시절 워낙 없이 살아서 냉장고가 가득 차야 마음이 편하다는 시어머니의 스타일이다. 반면 나는 가득 찬 냉장고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 안이 새로운 생명체의 파라다이스가 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성향은 음식을 할 때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가에서는 음식이 많이 남을 정도로 넉넉히 하는 반면 나는 한 번 여유 있게 먹을 정도만 준비한다. 상황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남편은 시부모님 앞에서 굳이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키며 딱 먹을 만큼만 한다고 평가했다. 그 손가락과 어투만 아니었어도 내 기분이 그렇게까지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같은 반찬 두 번 줘도 불평하지 말던가!

맛 한 번 보고 인상 쓰며 고추장 달라고 하지 말던가!

집에서 밥을 먹기나 하던가!


온갖 욕지거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려는 것을 참느라 내 얼굴은 쓸모를 다 한 쿠킹포일처럼 구겨졌다.


바로 그 (정말 남 같은) 남편 역시 밀키트는 요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는 음식을 앞에 놓고 '밀키트야?'라며 어이없어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단히 큰 잘못을 한 신입사원이라도 된 듯 주눅이 든다.


Image by Oberholster Venita from Pixabay


가족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의 핵심은 마음이다.

가족의 끼니를 생각하고 계절과 날씨와 컨디션과 개인의 기호에 맞춰 식단을 짜는 정성이 바탕이 된다. 밀키트를 활용한다고 그 마음과 정성이 결여되는 것은 아니다. (범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준비하든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음식의 양을 넘치게 많이 하든 한 번 먹고 치우기 좋게 하든 가족의 한 끼를 제대로 챙기려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밀키트는 요리가 아니라니요!!!


묻고 싶다, 밀키트가 요리가 아닌 이유를. 장에 가서 재료 하나하나 다 골라서 손질하며 준비하는 것만이 요리인 이유가 뭔지. 그리고 필요에 따라 당당히 밀키트를 쓰겠노라 선언한다.


밀키트니 뭐니 따져 묻기 전에 그 음식을 계획하고 준비한 상대의 마음을 봐주길, 그것이 요리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아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손맛이 없어 고추장을 대령해야 하지만!

밀키트를 애용하지만!

가족의 맛 좋은 끼니를 준비하고픈 마음만은 누구보다 뜨거운 나는,

오늘도 집으로 출근하는 전업주부다!!


keyword
이전 03화좁지만 깊은, 마흔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