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한테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집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라는 거야.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더니 찾아보면 엄청 많다고 그러는 거지. 아휴, 말이 안 통해."
나처럼 전업주부인, 딸아이 둘이 있는 친구가 답답하다며 얘기했다. 돈도 벌고 싶고, 자기 계발도 하고 싶고, 삶도 무기력하고 해서 다시 사회에 나가 일을 하고 싶지만 남편의 반대로 이번에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다는 게 이유였다. 남 일이 아니었다. 일을 하고 싶은 친구의 마음을 잘 알기에, 나 역시 그렇기에 쉬이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는 배우자나 부모님 혹은 그 외 도움의 손길 없이는 맞벌이가 쉽지 않다. 일하는 엄마를 달가워하지 않는 가정 분위기라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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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부터 '전업주부'를 원했던 남편에게 한동안 일하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그때마다 그는 "그렇게 일을 하고 싶으면 집 청소나 제대로 해.", "애나 잘 봐."라며 기를 꺾어 놨다. 돈을 벌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을 해도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굳이 외벌이를 하겠다는 그를 원망만 할 수는 없다. 일하는 부모 대신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그가 겪은 서러움도 모르지 않는다. 때문에 일을 하겠다는 뜻을 끝까지 고집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전업주부로서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게 참을 수 없이 무능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를 것이다.
남편은 사업을 한다. '마케팅 대행'이 그의 주 업무다. 12년째 지켜보니 이 사업에는 흐름이 있다. 상승기와 하락기, 그리고 유지기. 그래서 상승기와 유지기에는 하락기에 대비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하락기와 그것이 유지되는 기간이다. 아무리 대비를 했어도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리고 얼음덩이 같은 우박이 쏟아질 수 있다. 남편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라는 것을. 그때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건 전업주부에게 가장 괴로운 일이다. 가계 지출을 줄이는 것, 다시 상승기가 올 테니 기다리는 것. 단지 그것뿐이라는 게 이렇게 사람을 하찮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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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서는 '재택'을, 지역 맘카페에서는 '부업'을 키워드로 검색했다. 결과를 기다리며 몹시도 설렜다. 이제 나도 할 수 있는 걸 찾을 거야!!
종이봉투 하나 접어서 100원 받기.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전업주부를 보며 말한다. 남편이 벌어 온 돈으로 커피 마시며 수다나 떠는 한심한 여자라고. 어떤 이들은 손가락질을 하고 혀를 찬다. 그들은 알까. 무엇이든 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느끼는 무력함을. 우리나라 전업주부들이 '백수'가 아니라 '경력단절'로 일자리를 잃은 '돌아온 취준생'일뿐이라는 것을.
전업주부인 내가 세상에서 가장 하찮게 느껴지는 요즘. 무능함 속에서도 유의미한 가치를 찾으려 한다. 하릴없이 가계부를 뒤적이며 줄일 수 있는 지출을 찾는다. 일단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냉장고 파먹기부터 시작할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