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튀기는 것이 이렇게 힘들었던가. 만만하게 생각했던 그것을 완성해 내기 위해 나는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이들은 이런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이뤄내는 과정을 마음에 두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건의 발단은 어느 금요일 오후였다. 아이들도 불금을 즐기는 날. TV로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한 가지 요청이 더 있다면 팝콘을 먹으면서 보고 싶다는 것. 간식 바구니에 있던 전자레인지용 팝콘을 본 모양이었다. 까짓 거, 뭐 어려운 일이라고. 너희에게도 하루의 달콤한 밤은 필요하겠지.
좋아! 팝콘을 대령하겠나이다~~!!
정말이지, 호기로운 시작이었다.
[첫 번째 도전 ] 전자레인지용 팝콘을 전자레인지, 정확히 말하면 전자레인지 기능이 있는 광파오븐에 넣었다. 적당한 시간이 돼도 팝콘 봉지는 부풀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겨우 부풀었지만 팝콘이 튀기는 소리가 탐탁지 않았다. 광파오븐의 가동 시간을 늘리고 늘리고 또 늘렸지만 만족스러운 소리는 나지 않았다.
"엄마. 이제 열어봐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될까? 얼마 안 터진 것 같은데~?"
기대에 가득 찬 아이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두구두구두구. 걱정은 현실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옥수수알의 1/4 정도만 겨우 터졌는데 그마저도 너무 오랜 시간 열을 쐤는지 탄 상태였다.
"탄 맛이 너무 많이 나서 못 먹겠다~"
기대로 일렁였던 아이들의 눈빛은 이내 실망으로 가득 찼다. 혹시라도 잘못된 상품이었을까 싶어서 다른 봉지를 뜯어 다시 광파오븐에 넣었다. 이번에도 역시 실패.
[ 두 번째 도전 ] 팝콘이 종이팩 안에서 튀겨지지 않는다면 꺼내서 튀기면 되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전자레인지에서 사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용기에 팝콘알을 넣고 전자레인지를 돌리는 것이었다.
3분, 5분, 7분... 옥수수알이 잘 튀겨지지 않아 가동 시간은 계속 늘어났다. 1/3 정도 튀겨졌다 싶을 때 가동을 멈추고 꺼내려는데 플라스틱 용기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바닥이 녹아 있었다.
남은 옥수수알과 튀겨진 팝콘이 뒤섞인, 환장하겠는 비주얼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플라스틱 녹는 냄새가 조금씩 났던 것도 같다.
오기가 생겼다.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제부턴 아이들의 실망보다 팝콘 하나 제대로 튀겨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서라도 기필코 튀겨내야만 했다.
팝콘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
[ 세 번째 도전 ] 이번에도 전자레인지용 팝콘 종이팩에서 옥수수알만을 꺼냈다. 에어프라이어의 동그란 그물망(인지 통인지)에 넣고 '팝콘' 기능 선택. 통이 돌며 팝콘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성공이다! 팝콘아. 내가 이겼다!!
사실, 이 도전 전에 한 번의 도전이 더 있었다. 팝콘 종이팩째 에어프라이어에 넣은 후 '팝콘' 기능을 가동한 것인데, 팩이 부풀지도 않고 그대로의 자태를 유지했다.
망 한가득 튀겨진 팝콘을 보며 아이들을 소환했다.
"얘들아~ (팝콘 터지는)소리 들려~?"
하이파이브를 하며 나의 성공을 축하했다. 신나게 돌아가던 에어프라이어가 '땡'하고 작동을 멈추자마자 그릇에 그것들을 쏟아냈다.
어랏. 근데 맛이 어째 이상하다. 전자레인지용 팝콘은 원래 이런 맛인가. 정말 아~~무 맛도 없었다. 에어프라이에서 고기를 구우면 기름기가 쪽 빠지듯 팝콘에서도 버터와 단맛이 쏙 빠진 채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세 번째 도전에서도 팝콘에게 패배했다. 이젠 전자레인지용 팝콘도 다 떨어졌고. 아이들은 팝콘 대신 과자를 먹으며 영화를 봤지만 내 스스로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마지막으로 냄비로 튀겨봐야겠다.
어릴 때 엄마가 냄비로 해줬던 팝콘이 떠올랐다. 급하게 빠른 배송으로 팝콘용 옥수수를 주문했다. 몇 시간 뒤 아침이면 도착할 터였다. 팝콘에게 휴전을 선언하고 아침을 기다렸다.
[ 네 번째 도전 ] 나름 많은 조사를 통해 냄비 활용법을 숙지했다(라고 생각했다). 센불에 기름을 두르고 설탕과 소금을 조금씩 넣어서 가열한 후에 옥수수알을 넣은 뒤 뚜껑을 덮고, 팝콘이 튀기 시작하면 중불로 줄인다. 중간중간 냄비를 흔들어 주면 고르게 튀길 수 있다. 그런데 웬걸. 기름에 섞인 설탕과 소금이 냄비 바닥을 까맣게 태우는 동안 튀어 오른 팝콘은 몇 알 뿐. 철수세미로도 잘 벗겨지지 않는 탄 냄비만이 전리품처럼 남았다.
[ 다섯 번째 도전 ] 무엇이 틀렸는지 좀 더 전문적인 분석이 필요했다. '냄비 팝콘 원리'를 검색했다. 온도, 압력, 분자운동 어쩌고... 팝콘 하나에 과학적인 원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지금까지도 많은 과학자들이 팝콘을 더 맛있게 튀기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찌 됐든, 원리에 대해서도 좀 알았으니 이번에는 꼭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런데, 왜지! 기름도 넣었고, 탈 수 있는 설탕과 소금은 넣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도 야속하게 팝콘은 튀겨지지 않았다.
이 시점이었던 것 같다. 팝콘에 미친 사람 같았던 게.
'스텐 냄비로는 내부압력을 높이지 못하는 걸지도 몰라. 이것 봐. 김이 다 세고 있잖아.'
원래 장비 탓이 가장 쉽지 않던가.
[ 여섯 번째 도전 ] 좋아~! 이번엔 무쇠솥이다!!
김이 세지 않았다. 완벽하게 성공할 것 같았다. 팝콘이 튀나 안 튀나 솥에 귀를 바짝 붙이고 한참을 기다렸다.
"오오~ 튄다 튄다! 얘들아~ 소리 들려~?"
아이들도 "엄마. 이제 성공이야!"라며 기뻐했다. 원래도 두꺼운 팔뚝이 두 배가 되도록 무쇠솥을 흔들었다. 됐겠다 싶어서 뚜껑을 열었을 땐, 넣은 옥수수알에서 반 정도 튀겨진 팝콘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완벽하진 않아도 나름 괜찮았다.
"이것 봐! 엄마가 해냈어~!"
[ 일곱 번째이자 남편의 도전 ] "팝콘 튀겼어?" 남편이 들어오면서부터 물었다. 비록 계속 실패하고 있지만 냄새는 그럴싸하게 나는 모양이었다. 기대에 차 주방에 들어온 그는 참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새까만 냄비와 나를 번갈아 보는 눈빛은 신기함을 넘어 경이로움에 가까웠다.
"아니 이게 진짜 신기해~. 인터넷 검색해서 하라는 대로 했거든? 근데 이렇더라고. 정말 어이가 없어!!"
"냄비로 팝콘 한 번도 안 튀겨봤어?
"어. 그게.. 어릴 때 엄마가 해주거나... 내가 팝콘을 즐겨 먹지도 않았고.."
변명을 늘어놓게 되는 요상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또 다르게도 해보고.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는 몹시 어이없어하더니 본인이 해보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참으로 허무하게, 한 번에 튀겨냈다. 아주 많이. 이러다 팝콘이 냄비에서 흘러넘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로. 아이들도 신이 나서 달려들었다.
추억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팝콘이 눈처럼 내리던.
"이상하네. 내가 할 땐 안 됐는데.. 팝콘이 사람 차별하나;;"
"기름을 많이 넣어야 돼. 분명 건강 생각한다고 기름 조금 넣고 했겠지~!"
뭐, 그렇긴 했다. 그런데 찾아봤을 때 기름 안 넣고 튀긴 사람도 있었거든!!! 팝콘도 사람을 차별하나!!!라고 껄껄껄 웃어넘겼지만 나도 내가 참 어이없었다.
시무룩해 있는 내게 아이가 와서 말했다.
"괜찮아, 엄마. 그래도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잖아."
"그렇지~? 너희도 어떤 어려운 일 앞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엄마처럼 도전하다 보면 꼭 이루게 될 거야! 알겠지~?"
과정이야 어찌 됐든 그런 교훈이라도 얻었으면 된 거지.라고 억지로 끼워 맞추고 싶은 이 마음..
그날 우리는 배가 부를 정도로 팝콘을 먹었고, 그마저도 남아서 밀봉을 했으며 나는 까맣게 탄 냄비와 무쇠솥을 벅벅 긁으며 다음엔 기필코 한 번에 해내리라며 설욕전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