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전을 보느라 늦잠을 잔 1호가 눈을 비비며 지난 경기를 떠올렸다. '짜증 난다'라...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게 왜 짜증 나~?"
"졌으니까~"
"그러니까. 졌는데 왜 네가 그렇게 짜증이 나냐고."
"그거야.. 늦게까지 응원했는데 져서 답답하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고.."
"어떻게 매 경기를 이겨~? 졌다고 짜증 낼 거면 그게 진짜 응원을 하는 게 맞을까~?"
"아니.. 조금만 더 잘했으면... 그러니까 그렇지~"
"그럼 그냥 '아쉽다' 정도의 마음이면 되지 않겠어? 짜증이 나도 선수들이 더 나겠지~"
짜증이 난다는 아이의 마음에 공감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가스라이팅' 비슷한 것을 하고 말았다. 그래, 결승에 갔으면 하고 바랐는데 짜증이 날 수도 있지. 하지만 엄마 된 사람으로서 좀 더 낫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알려주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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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SNS에서 지난 경기 직후 멍하니 서 있는 손흥민 선수의 사진을 보는데 너무 안타까웠다. 대체 어떤 마음이었길래 저러고 있었을까.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깊이의 마음이었겠지. 손흥민 선수의 모습이 주목을 받았지만 다른 선수들의 뒷모습도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선수들을 보면 다 내 아들 같고 막냇동생 같아서 더 안타깝고 안쓰럽기만 하다.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배웠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40여 년을 살면서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과정이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선수들은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을 것이다. 또 국가대표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버티고 있겠지. 그들이 국가대표로서 어떤 혜택을 얼마만큼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들 모두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경기에서 진 것은 아쉬운 일이지 화를 내고 짜증을 낼 일은 아니다. 욕을 할 일은 더더욱 아니고. 이기면 마음껏 기뻐하며 축하하고, 지더라도 비난보다 격려를 보내면 그뿐이다.영원한 실패는 없지 않나. 실패는 부족함을 깨닫고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한 필수 과정일 수 있다. 그 과정에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죄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깨를 쫙 폈으면 좋겠다. 이 지난한 시간을 잘 버티고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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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에게도 그런 마음을 갖고 싶다. 그런 마음을 갖게 하고 싶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 더 주력하는 마음. 실패했어도 탓하지 않고 한 계단 더 올라갈 수 있도록 더 크게 응원하는 마음. 누군가의 말처럼 꺽여도 그냥 하는 마음.
아시안컵 경기들은 여러 아쉬움을 남겼지만 내겐 엄마로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좀 더 견고하게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호야~. 선수들이라고 지고 싶어서 졌겠어? 열심히 했는데 마음대로 안 될 수도 있는 거지~ 너도 영어 단어 후루룩 외우고 싶은데 잘 안 돼서 자꾸 틀리고 그러잖아. 그런 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
"맞아. 그런 것 것 같기도 하네~. 나 어제 (영어단어)되게 열심히 외웠는데 자꾸 기억이 안 나더라고. "
"잘하면 축하하고 못 하면 격려하는 거. 엄마 생각엔 그게 진짜 응원하는 마음인 것 같은데..."
"나도 그런 것 같아. 3-4위 전에서는 꼭 이겼으면 좋겠다~. 응원 열심히 해야지!"(3-4위 전은 안 한대ㅜㅜ)
과정을 중시한다고 해놓고 '짜증 난다'는 결과만을 놓고 또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아닐까 내심 자괴감이 들려던 찰나, 아이의 동의에 감사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