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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Dec 12. 2023

산타의 유효 기간을 무기한 연장합니다

엄마에게도 산타의 설렘이 필요해

'설렘'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이가 들면서 희미해지는 감정 중 하나가 바로 설렘일 텐데 마음속 어딘가 화석처럼 남아있을 그것을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최근 아이의 눈에서 설렘을 읽었던 날이 있었다. 2015년생 9살인 2호는 올해도 산타를 기다리며 설렘의 옷을 입었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기필코 산타를 찍고 말겠다며 들떴던 아이가 하루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산타할아버지는 엄마 아빠야?"


순간 움찔했다.


"응? 왜 그렇게 생각해?"

"ㄱ(2호의 친구)이 그러더라고. 아빠가 선물 주는 것 봤다고."

"그래?"


빛의 속도로 오만가지 생각이 오갔다. 이 참에 사실대로 말해? 아니야. 당분간은 동심을 좀 지켜주자. 산타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여야 할까? 내 안에 마치 여러 개의 인격이 있는 듯 수시로 언쟁이 시작됐다.


'제발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해요'라는 눈빛을 보내는 아이 앞에서 찰나가 억겁처럼 느껴졌다. T적인 나와 F적인 나의 주장은 계속 됐고, 결국 F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설렘. 그 단어 때문이었다.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는 느낌. 내겐 처음부터 그런 건 없었다는 듯 오랜 시간 무뎌진 감정이었다. 여러 곳에서 앞다퉈 커다란 트리를 장식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떠들썩해도 아무 감흥이 없어 답답했다. 이미 메말라버린 내겐 오아시스가 필요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인기인 서울의 유명 장소를 찾았다. '아, 저런 걸 하는구나.', '사람이 진짜 어마어마하게 많네.' 감정은 여전히 일직선을 그을 뿐 살아날 기색이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서글퍼졌다. 과거엔 크리스마스 때마다 루미나리에를 보러 다니며 좋아하던 나였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런 시간조차 사치라고 느껴졌던 게. 빠르게 흐르는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다. 이뤄야 할 것도, 지켜야 할 것도 많았기에 책임이 늘어날수록 표정 없이 한숨만 짓는 날들이 이어졌다. 좋은 감정보단 나쁜 감정에 익숙해진 시간들이었다. 당연히 설렘 같은 건, 없었다. 아무런 기대 없이 무채색 표정으로 계절을 맞이하고 한 해를 보내는 내가 있을 뿐.


나이란, 결혼이란, 출산이란, 육아란 설렘의 감정을 이토록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었던가. 가슴속 시간과 달리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야속해 어느 곳에도 마음 두지 못한 채 12월이 시작됐다.


온몸과 마음으로 설렘을 뿜어내는 아이가, 그래서 반가웠다. 내가 그리워한 그 감정이 아이에게는 가득했으니까.


"엄마, 엄마. 산타 할아버지 올해에도 오겠지?"

"엄마, 엄마. 산타 할아버지 드실 쿠키를 좀 준비할까?"

"엄마, 엄마. 근데 산타는 그 많은 선물을 어떻게 구하지?

"엄마, 엄마. 산타는 어떻게 하룻밤에 전 세계를 다 돌 수 있는 거야?"


산타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내 마음이 말랑해졌다.


산타 사진 앱으로 산타 사진을 찍어 보여줬을 때 놀라던 얼굴.

창문에 찍힌 손자국을 가리키며 요정의 발자국 아니냐며 호들갑 떨던 목소리.

방금 전까지도 없던 선물이 화장실 다녀오니 생겼다며 '엄마! 산타 봤어?'라고 신나 하는 모습.

산타를 보겠다며 새벽까지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다가 늦게 잠들어서 몰래 선물을 놔둘 틈을 못 찾아 맘 졸였던 새벽.


작은 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런 아이를 보며 좋았던 내 마음까지 아련히 피어올랐다. 이런 게 설렘이었나?


"엄마,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올해도 우리 집에 오겠지? 그렇지?"


아이가 재차 물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산타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여야 할까. 일단 올해는 아니기로 했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설레는 아이의 마음을, 동심을 당분간 더 지켜주는 걸로! 그런 아이를 보며 '올해는 어떤 방법으로 즐겁게 해 줄까.', '선물을 뜯어보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하나 둘 모이면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도 조금은 재미를 찾을 수 있겠지, 기대하며. 다시 설레고 싶다.



"그럼~. 당연하지. 올해는 어떤 선물을 주실까?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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