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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May 21. 2021

이게 혹시 '육아 권태기' 인가요?

육아 에세이

권태기. 사전적으로는 부부가 결혼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권태(단조로움, 따분함, 심심함)를 느끼는 시기를 말하는데 보통은 연인 사이에도 권태기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부모-자식 관계에도 권태기라는 게 있을까? 있다면 나는 분명 그게 맞는 것 같다. '육아 권태기'.



ⓒ픽사베이


코로나19 시국에서의 육아와 가사,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아이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짜증이 났다.


아이의 사소한 잘못에도 신경질을 내고 소리를 질렀다. 마음속으로 '내가 대체 왜 이러지?'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나는 이내 또 화를 내며 아이를 다그치고 있었다. '낮버밤반'도 이렇게 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시로 '엄마!', '엄마!' 부르며 오는 아이를 받아주는 것도 힘들었다. 나는 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아이가 계속 나를 부르는 통에 집중해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계획한 일들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으니 스트레스는 배가 됐다.


나란 사람은 이제 없다는 생각에 우울함도 밀려왔다. 그 와중에 자기 아이 키우는데 뭐가 힘드냐는 어떤 이들의 질책은 나를 더욱 쥐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었고, 매일 '아휴, 지겨워~'라며 한숨 쉬기 바빴다. 대화가 통하는 어른 사람이 그리웠다.


"제발 날 좀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내가 지금 '잘못된 엄마'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런 시간이 이어질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 괴롭혔다. 그러다 생각했다.


"도저히 계속 이러고는 못 살겠다"



ⓒ픽사베이


변화가 필요했다. 권태기를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은 '대화'라고 하는데, 나의 아이들은 아직 대화를 통해 뭔가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이럴 경우 엄마의 무조건인 노력이 필요하다. 연인이나 부부 관계는 양방이 함께 노력하면 되지만 육아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다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권태기도 일방적으로 내가 느끼는 것이니 해결도 내가 혼자 하는 게 맞았다.



일단 자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나는 평소 자는 시간이 짧다. 아이들을 재운 후에 뒷정리를 하고 낮 동안 다 하지 못한 일들을 포함 개인적인 것들을 하고 나면 평균 새벽 3시 정도에 잠자리에 드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약 4시간을 자는 격이다. 이 시간 동안 깊이 잠을 이룬다면 괜찮을 수도 있겠는데, 나의 경우 깊게 잠들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그러니 늘 피곤한 상태다. 


엄마도 본능에 충실한 사람인지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서는 짜증이 늘 수밖에 없다. 깊이 잘 수 없다면 자는 시간이라도 늘려 보자. 가능하면 밤 12시, 늦어도 1시 전에는 잠들려고 노력 중이다.


"여보~. 저 먼저 잡니다~"


낮에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짜증이 날 때는 30분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자꾸 짜증이 나려고 해. 그러니까 30분만 잘게. 알람 울리면 엄마 좀 깨워줘~"라며 나의 상태를 알리고 깨워달라는 부탁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엄마가 쉴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반찬을 다시 사기로 했다

나는 원래 반찬가게 이용을 권장하던 사람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엄마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차려주는 게 가장 좋지만 반찬가게를 이용하면 반찬의 종류를 다양화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반찬 하는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 그만큼 엄마 개인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반찬 가게 이용이 꺼려졌다. 어떤 상태에서 만들어진 반찬인지 알 수 없으니 불안했던 것이다. 매일 삼시 세끼를 일일이 해 먹이려니 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다시 반찬가게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직 코로나19에 대한 불안함이 있는지라 열을 가해 추가적인 조리를 할 수 있는 반찬, 예를 들면 볶음류, 탕류만 조금씩 구입하고 있다.


아이도 반찬가게의 반찬을 더 맛있게 먹는다. 아무래도 조미료를 쓰지 않고 최대한 저염으로 만드는 엄마의 음식보다는 달고 짠맛이 확실한 반찬가게의 맛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조미료 사용에 대한 걱정이 들기는 하지만 모든 반찬을 사 먹이는 것은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합리화시키고 있다.


"너희가 밥을 이렇게 잘 먹으니 엄마가 반찬 사는 당위성이 생기네~"




핸드폰을 내려놓기로 했다

핸드폰을 들고 있을 때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걸거나 어떤 요구를 하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다. 물론 핸드폰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쓸 데 없는 것들을 보고 있는 때도 많았다. 그걸 보자고 아이들을 귀찮아하는 내 모습이 한심해 가능한 핸드폰 들고 있는 시간을 줄이자는 생각을 했다. 그 시간에 아이들에게 조금 더 집중하기로~!


"핸드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끌 수 없다면 멀리 두기라도..."




개인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엄마에게 개인 시간은 굉장히 중요하다.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생각을 하다 보면 '나'를 잃지 않으면서 '나만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엄마'가 아닌 '나'의 성취감을 높이는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 이는 육아의 질을 높이는 데도 아주 중요하다.

요즘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개인 시간을 갖는 것이 쉽지 않지만 아이들 잠든 이후에라도 최대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려고 한다.


"얼른 들어가 자렴~. 엄마도 빨리 마무리하고 엄마 시간을 좀 가질게~"




좋은 엄마가 되자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예전에 가수 이효리 씨가 어느 방송에서 했던 말이 최근 들어 많이 생각났다. 방송인 이경규 씨가 어린아이에게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라고 했는데 옆에서 이효리 씨가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되면 되지!'라고 한 말 말이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내게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기보다 남들이 보기에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훌륭한 사람보다 본인이 만족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는 의미로 와닿았다.


나 역시 은근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애를 썼다. 조금이라도 기준에서 벗어나면 '나는 왜 이렇게 나쁜 엄마일까' 자책하느라 내 자존감에 더 깊은 상처를 냈다.


육아의 질을 높이려면 엄마의 자존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좋은 엄마가 돼야 한다는 내 강박을 버리기로 했다. 나는 그냥 '내 아이들의 엄마'면 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저 엄마 참 좋은 엄마네~' 대신 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그냥 엄마'가 되려고 한다.


"뭘 좋은 엄마가 돼! 그냥 엄마가 되면 되지!"



ⓒ픽사베이


이런 나 스스로의 변화들 때문인지, 호르몬에 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요즘은 조금씩 권태기를 극복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혹시 육아 권태기'인가 싶은 엄마들이 있다면, 엄마가 먼저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조언을 조심스레 하고 싶다. 별것 아닌 노력이어도 일단 엄마가 살아야 아이도 사는 법. 엄마가 엄마 자신을 먼저 아껴야 그 에너지가 아이들에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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